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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45) 진정으로 이기는 삶 (창세32,1-32)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13 조회수422 추천수1 반대(0) 신고

 

 

 

창세기(45) 23. 5. 13.

 

진정으로 이기는 삶

 

(창세32,1-32)

1 이튿날 아침 라반은 일찍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고 축복해 주었다. 그런 다음 라반은 길을 떠나 자기 고장으로 돌아갔다.

2 야곱도 길을 떠났다. 그는 도중에 하느님의 천사들과 마주쳤다. 3 야곱은 그들을 보고 이곳은 하느님의 진영이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다. 4 야곱은 에돔 지방 세이르 땅에 있는 형 에사우에게 자기보다 먼저 심부름꾼들을 보내면서, 5 그들에게 지시하였다. “너희는 나의 주인인 에사우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리의 종인 야곱이 이렇게 아룁니다. 저는 라반 곁에서 나그네살이하며 이제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6 저는 그동안 소와 나귀, 양과 염소, 남종과 여종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십사고, 이렇게 사람들을 보내어 주인님께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7 심부름꾼들이 돌아와서 야곱에게 말하였다. “나리의 형님 에사우에게 다녀왔습니다. 그분은 장정 사백 명을 거느리고 나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8 야곱은 몹시 놀라고 걱정이 되어, 자기 일행과 양과 염소, 소와 낙타들을 두 무리로 나누었다. 9 그는 에사우가 한 무리에게 달려들어 치더라도, 나머지 한 무리는 살아남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10 그러고 나서 야곱은 기도하였다. “저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 저의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 ‘너의 고향으로, 너의 친족에게 돌아가거라. 내가 너에게 잘해 주겠다.’ 하고 저에게 약속하신 주님! 11 당신 종에게 베푸신 그 모든 자애와 신의가 저에게는 과분합니다. 사실 저는 지팡이 하나만 짚고 이 요르단 강을 건넜습니다만, 이제 이렇게 두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12 제 형의 손에서, 에사우의 손에서 부디 저를 구해 주십시오. 그가 들이닥쳐서 어미 자식 할 것 없이 저희 모두를 치지나 않을까 저는 두렵습니다. 13 당신께서는 내가 너에게 잘해 주고, 네 후손을 너무 많아 셀 수 없는 바다의 모래처럼 만들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4 그날 밤 야곱은 그곳에서 밤을 지냈다. 그런 다음 그는 자기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자기의 형 에사우에게 줄 선물을 골라내었다. 15 암염소 이백 마리와 숫염소 스무 마리, 암양 이백 마리와 숫양 스무 마리, 16 어미 낙타 서른 마리와 거기에 딸린 새끼들, 암소 마흔 마리와 황소 열 마리, 암나귀 스무 마리와 수나귀 열 마리였다. 17 야곱은 이것들을 종들의 손에 한 떼씩 따로 넘기면서 나보다 앞서 가되, 떼와 떼 사이에 거리를 두어라.” 하고 종들에게 일렀다. 18 그리고 맨 앞에 선 종에게 지시하였다. “나의 형 에사우가 너를 만나, ‘너는 뉘 집 사람이냐?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에 있는 이것들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묻거든, 19 이렇게 대답하여라. ‘이것들은 나리의 종 야곱의 것인데, 주인이신 에사우께 보내는 선물입니다. 야곱도 저희 뒤에 오고 있습니다.’” 20 야곱은 둘째와 셋째 종에게도, 그리고 가축 떼를 뒤따라가는 자들에게도 지시하였다. “너희도 에사우를 만나거든 그렇게 말해야 한다. 21 그리고 나리의 종 야곱도 저희 뒤에 오고 있습니다.’ 하고 말해야 한다.” 야곱은 선물을 먼저 보내어 형의 마음을 풀어야지. 그런 다음 그를 보게 되면, 그가 나를 좋게 받아들일지도 모르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이렇게 해서 야곱은 선물을 앞서 보내고, 자신은 그날 밤을 야영지에서 지냈다.

23 바로 그 밤에 야곱은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야뽁 건널목을 건넜다. 24 야곱은 이렇게 그들을 이끌어 내를 건네 보낸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냈다. 25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26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27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그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30 야곱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지만, 그는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그곳에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었다. 31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32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33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짐승의 엉덩이뼈에 있는 허벅지 힘줄을 먹지 않는다. 그분께서 야곱의 허벅지 힘줄이 있는 엉덩이뼈를 치셨기 때문이다.

 

산 너머 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인생에 있어서 도무지 인간적으로는 넘지 못할 산이 있습니다. 그 산을 하느님의 은혜로 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더 큰 산이 내 앞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이 그렇습니다. 야곱은 외삼촌라반이라는 그가 넘을 수 없는 산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3123절에 보면 그는 도망가는 야곱을 7일을 쫓아와서 그를 붙잡으려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선악 간에 그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창세31,24). 그래서 외삼촌라반은 미츠파에서 야곱과 언약을 맺습니다(창세31,44). 이후 이 미츠파는 장차 이스라엘백성들이 위기 때마다 모이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더 큰 산이 있습니다. 바로 에사우입니다. 외삼촌라반은 야곱의 품삯은 빼앗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에사우는 야곱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고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향으로 가면 형 에사우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32,2) 2 야곱도 길을 떠났다. 그는 도중에 하느님의 천사들과 마주쳤다.

 

야곱이 길을 간다고 하는데 원문에는 그의 길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때 하느님의 천사(사자)가 야곱을 찾아옵니다. 그래서 야곱을 만납니다.

 

(창세32,3) 3 야곱은 그들을 보고 이곳은 하느님의 진영이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다.

 

야곱은 하느님의 군대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땅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하나임이란 두 무리의 군대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야곱의 길을 인도하고 뒤에서 야곱을 지켜주는 하느님의 군대가 야곱을 찾아와서 그를 만나주었습니다.

하느님의 길을 가는 야곱에게 왜 하느님의 군대가 나타났겠습니까? 그 이유는 에사우가 군대를 이끌고 야곱을 죽이러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군대를 미리 보내주셔서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맞춤형으로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라반과 같이 한 개인이 우리를 헤치려하면 그에게 찾아가셔서 막아주십니다. 그런데 에사우와 같이 군대가 우리를 헤치려하면 하느님께서는 두 군대를 우리 앞뒤에 보내주셔서 우리를 켜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일은 나의 길을 걸어가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의 길을 걸어가기 바랍니다. 그러면 군대가 우리를 위협한다할지라도 하느님의 군대가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이 하느님의 군대를 만났습니다. 그러면 현실가운데 그 어떤 문제도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군대가 에사우의 군대를 물리치셔야 하는데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이 에사우에게 사람을 보내니까 에사우가 400명을 거느리고 온다고 합니다. 400명이 야곱을 환영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에사우는 사냥꾼입니다. 사냥꾼은 절대 사냥감을 놓치지 않습니다. 야곱을 죽이기 위해서 오고 있습니다.

 

(창세32,8) 8 야곱은 몹시 놀라고 걱정이 되어, 자기 일행과 양과 염소, 소와 낙타들을 두 무리로 나누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을 두 떼로 나눕니다. 그래서 에사우가 한 떼를 치면 다른 한 떼는 도망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10-12절에 보면 야곱이 기도합니다.

 

(창세32,13) 13 당신께서는 내가 너에게 잘해 주고, 네 후손을 너무 많아 셀 수 없는 바다의 모래처럼 만들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현실을 보니까 여전히 불안합니다. 두렵습니다. 그래서 형 에사우를 위하여 예물을 보냅니다(14). 이렇게 야곱이 에사우를 위하여 예물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창세32,21) 21 야곱은 선물을 먼저 보내어 형의 마음을 풀어야지. 그런 다음 그를 보게 되면, 그가 나를 좋게 받아들일지도 모르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예물을 에사우에게 주면, 에사우의 마음이 풀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야곱의 마음이 불안합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22절에 야곱은 선물을 앞서 보내고, 자신은 그날 밤을 야영지에서 지냈다.” 라고 합니다.

 

(창세32,25) 25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이제 야곱을 홀로 남습니다. 이때 야곱이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합니다. 여기서 씨름하다고 하는 것은 격렬하게 먼지가 나도록 싸우는 것입니다. 야곱은 처음에는 이 사람이 누구인줄 몰랐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싸우는 이유는 지금까지 야곱이 살아온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어느 누구에게도 싸워서 한 번도 져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싸워서 이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형과의 장자권의 싸움에서도 무조건 이기려 했습니다. 그래서 팥죽으로 형의 장자의 명분도 빼앗았습니다. 또 축복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도 라반을 이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서 많은 재산을 빼앗아 왔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지금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누구든지 그 앞에 있으면 그 사람과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과의 싸움에서 이깁니다.

 

(창세32,26) 26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이 사람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야곱을 이기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진짜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졌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얼마든지 야곱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이기려고 하는 야곱에게 져 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이 사람과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힘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그가 만났던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합니다.

 

(창세32,27) 27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그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하느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잘 몰랐기 때문에 야곱의 이름을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 것은 야곱이 그의 이름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란 발꿈치를 잡는 자. 속이는 자, 빼앗는 자 그래서 무조건 이기려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은 평생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경재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누구이든, 어떻게 해서라도 싸워서 이겨보려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야곱은 평소대로 그 누구라도 만나면 싸우고 무조건 이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느님께서도 야곱을 이기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장 많이 오해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느님을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하느님조차도 싸워서 이겨야 하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경(聖經)을 봐도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가운데서 하느님께서 야곱을 이기지 못하신 것은 진짜 야곱을 이기지 못하신 것이 아니라, 져 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무조건 이기려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얍복강에서 만난 하느님은 하느님조차도 이기려고 하는 야곱에게 져 주실 정도로 낮아지신 하느님입니다. 이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 것은 그동안 야곱이 살아왔던 삶을 상기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느님나라의 백성과는 상관없이 그의 이름대로 무조건 이기려고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새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의 대표적인 이름이 됩니다. 우리도 영적인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뜻은 하느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정말 인간이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절대 우리 인간이 겨루어 이길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모든 인간을 이기려고 하고, 심지어 하느님조차도 이기려고 하는 야곱에게 하느님께서 져주셨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세상나라와는 다른 하느님나라백성의 삶입니다.

세상나라는 무조건 이기려고 하는 야곱의 삶입니다. 그런데 하느님나라 백성의 삶은 내가 이길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삶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이 다스리고 지배하는 하느님나라의 삶입니다. 하느님은 서로 이기려고 하는 세상가운데서 져 주는 자를 축복하시고, 그를 이기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야곱은 어떻게 해서든 형 에사우를 이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형 에사우를 이기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형 에사우의 분노를 쌓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게 된 것은 하느님께서 야곱의 환도뼈 힘줄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야곱은 그가 의지했던 인간적인 힘의 근원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항상 우리의 힘과 지혜를 의지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어느 순간에 우리의 삶 가운데서 직접 나타나셔서 우리의 힘의 근원을 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이지만, 우리 안에는 아직까지도 내 힘과 지혜를 의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런 우리를 아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계속해서 끊임없이 한 순간도 아니 하시고 우리의 환도 뼈를 치시고 계십니다.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과 세상 사람의 차이는 세상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나의 환도 뼈를 치시면 그것 때문에 낙심하여 하느님을 떠나갑니다. 그런데 진정한 하느님나라의 백성은 하느님께서 나의 환도 뼈 힘줄을 치시면 그것 때문에 더욱더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이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야곱은 하느님께서 그의 환도 뼈를 치신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이제부터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기도하였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도무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에사우의 마음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야곱은 자신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는 야곱의 삶에서 하느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삶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느님께 한 방 얻어 맡아서 평생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절름발이가 되고, 불구가 되었고,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럴 때 브니엘에 태양이 떠올랐습니다(창세32,31). 태양이 돋았다는 말은 그의 삶의 희망의 태양이 돋았다는 말입니다.

 

(창세33,3) 3 야곱 자신은 그들보다 앞장서 가면서, 형에게 다가갈 때까지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하였다.

이제 야곱은 형 에사우에게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힙니다. 이것은 내가 당신에게 졌습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에게 한 수 배운 것입니다.

(창세33,4) 4 그러자 에사우가 야곱에게 달려와서 그를 껴안았다. 에사우는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 입 맞추었다. 그들은 함께 울었다.

 

우리도 어떻게 할 때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화해의 역사가 일어나고, 우리의 삶 가운데 진정한 희망의 해가 돋을 수 있겠습니까? 무조건 이기려고 하는 세상에 속한 나의 옛 자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죽어야합니다. 무조건 이기려는 이 세상가운데 져 주어야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 그럴 때 우리의 삶 가운데 희망의 해가 떠오르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진정으로 이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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