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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16 조회수446 추천수3 반대(0) 신고

230516. 부활 제6주간 화요일.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요한 16,5)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앞부분>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승천과 성령의 파견을 예고하시는 장면이고, <뒷부분>은 세상에 대한 성령의 역할에 대한 말씀입니다. <뒷부분>은 내일 복음과 함께 보도록 하고, 오늘은 <앞부분>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승천을 암시하십니다.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요한 16,5)

이는 당신이 파견 받아 오셨다는 것과 보내신 분의 사명을 마치실 때가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당신이 떠나간다는 말에 제자들의 마음은 근심이 가득 찼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보호자’이신 성령의 파견에 대해서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요한 16,7)

왜 꼭 당신이 가셔야만 그분을 보내시는 것일까? 아니, 성령은 이미 당신과 함께 계시는 분이 아니신가? 그런데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고 하시니, 이는 무슨 말씀일까? 이 말씀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를 육에 따라서만 아는 한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하면서, “동정녀의 태에서 잉태된 종의 모습이 우리 육체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야,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 자체에 순수한 마음의 눈을 두기 시작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합니다. 그레고리우스 역시 “내가 나의 육체를 너희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지 않으면, 보호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너희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끌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설합니다. 이는 마치 사도 바오로가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육적인 판단으로 알아보지 않으렵니다.”(2코린 5,16) 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성령께서 함께 같이 계실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눈이 그분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의 눈이 영적으로 열리게 되면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제가 가야 오늘이 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시간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함께 있으면서도, 오늘을 통하여 어제도 내일도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차원에서, 마치 아버지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구원하실 수 있으시지만 아들을 통하여 그것을 이루시면서 아들을 드러내시듯이, 예수님께서도 모든 일을 이루실 수 있지만 성령의 존귀함을 드러내시기 위하심입니다. 이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본성이며, 삼위일체 사랑의 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사랑은 자신 안에서 자신이 아닌 타자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곧 아버지께서는 아들과 성령을 드러내시고, 아들은 아버지와 성령을 드러내시고,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을 드러내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 그분을 사랑한다면, 우리 안에서 우리가 아닌 그분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요한 16,7)
 
주님!
저를 부수고 당신을 드러내소서!
보는 것, 아는 것에 매여 있는 저를 부수소서.
눈을 비추시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소서.
제 자신에게 매이지 않는 영을 보내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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