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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61) 야곱의 유언(遺言)과 축복(祝福) (창세48,1-22)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30 조회수238 추천수3 반대(0) 신고

 

 

창세기 (61) 23. 5. 29.
 

야곱의 유언(遺言)과 축복(祝福)

 

(창세48,1-22)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요셉은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두 아들 므나쎄와 에프라임을 데리고 갔다. 2 아들 요셉이 왔다고 사람들이 야곱에게 알렸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기운을 내어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다. 3 야곱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가나안 땅 루즈에서 나에게 나타나 복을 내려 주시며, 4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게 하겠다. 또한 네가 민족들의 무리가 되게 하고, 이 땅을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겠다.’ 5 그러니 이제 내가 이집트로 너에게 오기 전에, 이집트 땅에서 태어난 너의 두 아들을 내 아들로 삼아야겠다. 에프라임과 므나쎄는 르우벤과 시메온처럼 내 아들이 되는 것이다. 6 이 아이들 다음에 너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은 너의 아이들이다. 그들은 제 형들의 이름으로 상속 재산을 받을 것이다. 7 내가 파딴에서 가나안 땅으로 와서 길을 가던 중, 에프랏까지는 아직 얼마 더 가야 하는 곳에서 그만 라헬이 죽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에프랏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옆에 그를 묻었다.”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 아이들은 누구냐?” 하고 물었다. 9 요셉이 이 아이들은 하느님께서 이곳에서 저에게 주신 아들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이스라엘이 아이들을 나에게 데려 오너라. 내가 아이들에게 축복하겠다.” 하고 말하였다. 10 그런데 이스라엘은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서 앞을 볼 수 없었다. 요셉이 아이들을 가까이 데려가자,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입 맞추고 끌어안았다.

11 그런 다음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나는 네 얼굴을 다시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이제 하느님께서는 네 자식들까지 보게 해 주시는구나.” 12 요셉은 아이들을 아버지 무릎에서 물러나게 하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였다. 13 요셉은 두 아이를 데려다, 에프라임은 오른손으로 이끌어 이스라엘의 왼쪽으로, 므나쎄는 왼손으로 이끌어 이스라엘의 오른쪽으로 가까이 가게 하였다. 14 그러자 이스라엘은 손을 엇갈리게 내밀어, 에프라임이 작은아들인데도 오른손을 에프라임의 머리에 얹고, 므나쎄가 맏아들인데도 왼손을 므나쎄의 머리에 얹었다. 15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축복하였다. “저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을 당신 앞에서 살아가게 하신 하느님, 제가 사는 동안 지금까지 늘 저의 목자가 되어 주신 하느님, 16 저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 주신 천사께서는 이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 나의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름이 이 아이들에게 살아 있으리라. 또한 이들이 세상에서 크게 불어나리라.” 17 요셉은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프라임의 머리 위에 얹은 것을 보고는 못마땅하게 여겨, 아버지의 손을 잡아 에프라임의 머리에서 므나쎄의 머리로 옮기려 하였다. 18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닙니다, 아버지. 이 아이가 맏아들이니, 이 아이 위에 아버지의 오른손을 얹으셔야 합니다.” 19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거절하며 말하였다. “아들아, 나도 안다, 나도 알아. 이 아이도 한 겨레를 이루고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우가 그보다 더 크게 되고, 그의 후손은 많은 민족을 이룰 것이다.”

20 그날 야곱은 그들에게 이렇게 축복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너희를 들어 말하며 이렇게 축복하리라. ‘하느님께서 너를 에프라임과 므나쎄처럼 만들어 주시리라.’” 이렇게 그는 에프라임을 므나쎄 앞에 내세웠다. 21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 나는 이제 죽는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와 함께 계시면서, 너희를 다시 조상들의 땅으로 데려가 주실 것이다. 22 그리고 나는 너의 형제들보다 너에게, 내 칼과 활로 아모리족의 손에서 뺏은 스켐 하나를 더 준다.”

 

오늘 본문과 49장은 야곱이 죽기 직전에 그의 자녀들에게 축복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은 그동안 오직 자신만이 복을 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노년의 야곱은 그렇지 않습니다. 파라오를 만나서도 그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자녀들을 축복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자신의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은 단순히 가정의 자녀들을 축복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2절에 보면 야곱을 가리켜 야곱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손들에게 축복을 하는 것은 자신의 자녀들만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다음세대들에게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야곱이 어떤 유언을 하였으며, 어떤 축복을 하였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창세48,1)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요셉은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두 아들 므나쎄와 에프라임을 데리고 갔다.

 

여기서 이런 일이 있은 뒤에는 야곱이 자신이 죽으면 애굽에 장사(葬事)를 하지 말고 가나안 땅에 있는 조상의 묘지에 장사를 하라고 말한 후에 라는 말입니다(창세47,29-30). 야곱은 지금 147세로 이미 자신이 죽을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4729절과 30절에서 자신의 장지(葬地)를 애굽으로 하지 말고 가나안땅 자신의 조상들이 있는 곳으로 하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이렇게 유언을 하고 난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네 아버지가 병 들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때 요셉은 자신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옵니다.

 

(창세48,2) 2 아들 요셉이 왔다고 사람들이 야곱에게 알렸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기운을 내어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다.

 

여기서 같은 절에서 야곱과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두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야곱의 인간적인 이름이고 이스라엘은 하느님 백성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마지막에 죽을 때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으로 유언을 하고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 야곱은 나이가 많아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었고 병이 들었지만 더 힘이 있습니다. 그의 육신의 눈은 어두웠지만 영적인 눈은 더 밝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야곱은 병이 들었지만,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스라엘은 힘을 내어서 침상에 누워있지 않고 앉아서 유언을 하고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오로는 코린토 후서416절에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나이가 들어 육신은 낡아지지만 영적으로는 날로 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야곱이 요셉에게 마지막 유언을 합니다.

 

(창세48,3-4) 3 야곱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가나안 땅 루즈에서 나에게 나타나 복을 내려 주시며, 4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게 하겠다. 또한 네가 민족들의 무리가 되게 하고, 이 땅을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겠다.’

 

이전에 가나안 땅 루즈에서 전능하신 하느님이 내게 나타나시어 복을 주시며 야곱은 유언을 제일 먼저 요셉에게 합니다. 그 이유는 요셉은 11번째 아들이지만 야곱은 그를 장자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대기상 51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맏아들 르우벤의 자손들은 이러하다. 르우벤은 맏아들이면서도 아버지의 잠자리를 더럽혔기 때문에, 그의 맏아들 권리가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아들들에게 넘어가고, 족보에 맏아들로 오르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48,5) 5 그러니 이제 내가 이집트로 너에게 오기 전에, 이집트 땅에서 태어난 너의 두 아들을 내 아들로 삼아야겠다. 에프라임과 므나쎄는 르우벤과 시메온처럼 내 아들이 되는 것이다.

 

야곱은 요셉에게 네가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나쎄는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아들들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요셉의 두 아들을 야곱에게 입양을 시키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두 아들을 르우벤과 시므온과 같이 12형제 가운데 들어오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왜 야곱이 죽기 직전에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을 시키겠다고 합니까? 그 이유는 요셉의 두 아들은 모두 애굽 제사장 딸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창세4150절에 보면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서 두 아들이 태어났다. 온의 사제 포티 페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 낳아 준 아들들이다.”고 합니다.

에브라임과 므나쎄의 외할아버지는 애굽의 신인 온의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제사장의 딸입니다. 신앙은 어머니의 영향이 더 큽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아버지가 다른 민족이라도 유대인으로 인정을 해 줍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두 아들은 잘못하면 애굽의 신을 섬기는 어머니의 신앙을 따라 갈 수 있었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제일 큰 고민이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느님 백성인 12지파가운데 들어오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에브라임과 므나쎄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지파가 되었습니다.

 

(창세48,8)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 아이들은 누구냐?” 하고 물었다.

 

이것은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요셉에게 이 두 아들들은 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9절에서 이 아이들은 하느님께서 이곳에서 저에게 주신 아들들입니다.” 요셉은 이 두 아들들이 애굽 제사장의 딸을 통해서 낳은 아들이지만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야곱이 그들을 데리고 내 앞에 나아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합니다(9).

 

우리가 본문에 나오는 야곱의 유언과 축복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느님나라는 세상나라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야곱의 오른쪽에는 장자인 므나쎄를 왼 쪽에는 차남인 에브라임을 둡니다. 그래서 오른 손으로는 장자인 므나쎄를 축복하게 하고, 왼손으로 차남인 에브라임을 축복하게 합니다(13).

당시에 유대인들이나 고대근동 사람에게 오른 손은 권위와 능력 그리고 축복과 은혜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당시에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도 장자가 오른손으로 더 큰 복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세48,14) 14 그러자 이스라엘은 손을 엇갈리게 내밀어, 에프라임이 작은아들인데도 오른손을 에프라임의 머리에 얹고, 므나쎄가 맏아들인데도 왼손을 므나쎄의 머리에 얹었다.

 

손을 앞으로 펴는 것이 더 쉽습니까? 어긋나게 하는 것이 더 쉽습니까? 젊은 분들은 상관이 없지만 나이가 100살이 넘은 분들은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147세의 야곱은 팔을 엇바꾸어 얹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어떻게 합니까?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오른손으로는 차남인 에브라임을 왼 손으로 장남인 므나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였습니다(17). 그래서 아닙니다, 아버지. 이 아이가 맏아들이니, 이 아이 위에 아버지의 오른손을 얹으셔야 합니다.” 라고 합니다(18).

그러니까 야곱이 19절에 아들아, 나도 안다, 나도 알아. 이 아이도 한 겨레를 이루고 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우가 그보다 더 크게 되고, 그의 후손은 많은 민족을 이룰 것이다.” 고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손을 엇바꾸어 얹은 것을 연세가 많아서 실수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14절에 엇바꾸어 라는 말이 원어로 식켈이라는 말인데, 이 뜻은 신중하다. 지혜롭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손을 엇바꾼 것은 나이가 들어서 실수로 한 행동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 하느님의 뜻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한 행동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야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나라는 세상나라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나라는 장자가 큰 자로서 더 큰 복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느님나라는 작은 자가 더 큰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장남인 이스마엘이 아니라 작은 자인 이사악입니다. 이사악의 장남인 에사우가 아니라 작은 자인 야곱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구원받은 열두 형제의 대표도 첫째가 아니라 11번째인 요셉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두 아들 중에서도 작은 자인 에프라임이 더 큰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에프라임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대표적인 지파가 됩니다. 그래서 야곱이 손을 엇바꾸어 축복하는 것은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겨야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은 태어나기 전에 하느님께서는 어머니 레베카에게 형이 아우를 섬기리라고 하셨습니다.(창세25,23). 로마서를 보면 이것은 하느님께서 작은 자인 야곱을 사랑하시고 선택하셔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로마8,11-13). 또 이것은 말 그대로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야곱을 부르신 목적은 섬기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삶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무조건 높은 자가 되고 이기는 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기는 것이 큰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형도 이기려고 하고 하느님도 이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야곱이 얍복강에서 만난 하느님은 야곱에게 져 주실 정도로 낮아지신 하느님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야곱의 환도 뼈를 쳐서 야곱은 평생 절름발이로 살았습니다. 히브리서1121절에 보면 믿음으로써,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아들들에게 하나하나 축복해 주고, “지팡이 끝에 의지하여 하느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야곱이 침상에 앉아서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을 하는데, 히브리서에서는 지팡이 머리에 의지해서 축복하고 경배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할 때 얍복강에서 하느님께서 환도 뼈를 치신 사건을 생각하면서 침상에 앉았지만 지팡이를 의지해서 축복을 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손을 엇바꾸어 축복하면서 속으로 애들아 나는 너희들이 나처럼 험악한 세월을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평안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애들아 너희들은 절대 나처럼 살지 마라. 나는 무조건 이기려는 자가 되려고 하다가 하느님께 한 대 맞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지팡이를 의지해서 너희들에게 말한다. 섬기는 자가 큰 자다. 나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러니 너희들은 섬기는 자가 되어라, 그래서 나는 작은 자에게 큰 축복을 주고, 큰 자에게는 작은 축복을 주는 것이다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10,42-44)42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4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저 영원한 하느님나라에 가서 우리 모두가 영원히 왕 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만 왕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섬기는 왕이 될 것입니다. 저 영원한 하느님나라에서는 우리 모두가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왕입니다.

그런데 저 영원한 하느님나라는 우리가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 하느님나라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왕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꽃은 전체로 보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꽃은 가을 햇살에 하나하나 보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찮은 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이 보실 때 우리 모두 다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운데 하찮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나만 왕이다 나만 꽃이라고 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다 왕입니다. 꽃입니다. 그래서 나만 섬겨달라고 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왕들이 됩시다. 그럴 때 이 땅에서 하느님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남보다 높이 되려고 하지 말고 더 낮게 되기를, 섬김을 받으려하지 말고 더 섬기기를, 큰 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작은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작은 자에 주시는 하느님의 큰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둘째, 또 우리는 자녀들에게 하느님을 믿는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주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동행하시던 하느님을 유산으로 주었습니다. 또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목자가 되어주셔서 나를 기르시던 하느님을 유산으로 주었습니다. 또 환난 가운데 건져주신 하느님을 유산으로 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함께 늘 동행하시던 하느님께서 너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거친 내 삶에 목자가 되어주셔서 나를 지금까지 길러주신 하느님께서 너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나를 환난가운데서 건지신 하느님께서 너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하셨던 하느님께서 너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가장 큰 재산은 내기 섬겨왔던 하느님, 나와 동행하셨던 그 하느님, 우리 삶의 목자가 되셔서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시며 길러주셨던 그 하느님, 우리를 모든 환난 가운데서 그때마다 건져주신 그 하느님을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모두 이 하느님을 믿음으로 모든 삶이 만사형통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야곱의 유언을 통해서 우리가 자녀들에게 희망을 주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야곱은 요셉에게 내가 죽지만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셔서 너희를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2절에 나는 너의 형제들보다 너에게, 내 칼과 활로 아모리족의 손에서 뺏은 스켐 하나를 더 준다.고 합니다.

여기 보면 야곱은 네가 네게 형제보다 가나안에 있는 스겜 땅을 더 준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미 이루어진 완료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적어도 430년 뒤입니다. 광야의 시간을 포함하면 적어도 470년 후에 일어날 일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말합니다.

앞으로 470년 뒤에 일어날 일들이 이미 너희들에게 이루어졌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기근으로 애굽으로 피하여 왔습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멀고도 먼 미래의 일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마지막 죽을 때 그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또 교회 다음세대들에게 무엇을 마지막에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주어야겠습니까?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이고 맹목적인 희망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하셨던 그 하느님을 믿는 신앙으로 인한 희망입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미래를 두고 여러 가지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근심하고 있습니다.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켜주시리 주 날개 밑에 있어라 주 너를 지켜주실 것이다.” 라고 축복해 주십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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