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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62) 저주(咀呪)가 아니라 축복(祝福) (창세49,1-28)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30 조회수339 추천수2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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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62) 23. 5. 30.

 

저주(咀呪)가 아니라 축복(祝福)

 

(창세49,1-28)

1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2 야곱의 아들들아, 모여 와 들어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 3 르우벤아, 너는 나의 맏아들 나의 힘, 내 정력의 첫 열매. 너는 영광이 넘치고 힘이 넘친다. 4 그러나 물처럼 끓어오르니 너는 남보다 뛰어나지 못하리라. 너는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갔다. 그때 너는 내 침상을 더럽혔다.

5 시메온과 레위는 형제 그들의 칼은 폭행의 도구. 6 나는 그들의 모의에 끼지 않고 그들의 모임에 들지 않으리라. 그들은 격분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멋대로 소들을 못 쓰게 만들었다. 7 포악한 그들의 격분, 잔악한 그들의 분노는 저주를 받으라. 나 그들을 야곱에 갈라놓으리라. 그들을 이스라엘에 흩어 버리리라.

8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9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10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11 그는 제 어린 나귀를 포도 줄기에, 새끼 나귀를 좋은 포도나무에 매고 포도주로 제 옷을, 포도의 붉은 즙으로 제 겉옷을 빤다. 12 그의 눈은 포도주보다 검고 그의 이는 우유보다 희다.

13 즈불룬은 바닷가에 살며 배들의 항구가 되고 그 경계는 시돈에 이르리라. 14 이사카르는 튼튼한 나귀 가축 우리 사이에 엎드린다. 15 쉬기에 좋고 땅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는 그곳에서 짐을 지려고 어깨를 구부려 노역을 하게 되었다.

16 단은 이스라엘의 여느 지파처럼 제 백성을 정의로 다스리리라. 17 단은 길가의 뱀 오솔길의 독사. 말 뒤꿈치를 물어 그 위에 탄 사람이 뒤로 떨어진다. 18 주님, 제가 당신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19 가드는 약탈자들의 습격을 받겠지만 그 자신이 그들의 뒤를 습격하리라. 20 아세르는 양식이 넉넉하여 임금에게 진미를 올리리라. 21 납탈리는 풀어 놓은 암사슴 예쁜 새끼들을 낳는다.

22 요셉은 열매 많은 나무 샘 가에 심긴 열매 많은 나무. 그 가지가 담장 너머로 뻗어 간다. 23 궁수들이 그를 어지럽히고 그에게 활을 쏘며 덤벼들었어도 24 그의 활은 든든히 버티고 그의 손과 팔은 날쌔었다. 이는 야곱의 장사의 손, 이스라엘의 목자요 바위이신 분의 이름 덕분이고 25 네 아버지의 하느님 덕분이다.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전능하신 분 덕분이다. 그분께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위에 있는 하늘의 복, 땅속에 놓여 있는 심연의 복, 젖가슴과 모태의 복을 내리시리라. 26 네 아버지의 복은 예로부터 있던 산들의 복보다, 처음부터 있던 언덕들의 탐스러운 것들보다 크다. 그 복이 요셉의 머리로, 제 형제들 가운데에서 봉헌된 자의 정수리로 내리리라.

27 벤야민은 약탈하는 이리 아침에는 움켜쥔 것을 먹고 저녁에는 잡은 것을 나눈다.” 28 이들이 모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다. 이것은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 각자에게 알맞은 복을 빌어 주면서 한 말이다.

 

오늘 본문도 야곱의 유언과 축복이 나옵니다.

(창세49,1) 1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야곱은 먼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유언을 하고 난 다음에 모든 아들들을 불러 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야곱은 아들들에게 유언을 하면서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이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유언을 통해서 장차 미래에 있을 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창세49,28) 28 이들이 모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다. 이것은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 각자에게 알맞은 복을 빌어 주면서 한 말이다.

 

여기 보면 야곱의 유언은 그들에게 대한 축복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의 유언은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한 예언이고, 또 축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이것이 과연 축복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창세49,3-4) 3 르우벤아, 너는 나의 맏아들 나의 힘, 내 정력의 첫 열매. 너는 영광이 넘치고 힘이 넘친다. 4 그러나 물처럼 끓어오르니 너는 남보다 뛰어나지 못하리라. 너는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갔다. 그때 너는 내 침상을 더럽혔다.

 

르우벤은 장자로서 내 능력이요 기력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는 물처럼 끓어오르니 탁월하지 못하리라. 네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을 범했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49,5-6) 5 시메온과 레위는 형제 그들의 칼은 폭행의 도구다. 6 나는 그들의 모의에 끼지 않고 그들의 모임에 들지 않으리라. 그들은 격분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멋대로 소들을 못 쓰게 만들었다.

 

시메온과 레위는 형제인데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라고 합니다. 이것은 디나가 스켐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 시메온과 레위가 스켐의 모든 사람을 칼로 죽인 사건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왜 그들의 모의와 집회에 상관하지 말고, 참여하지 말라는 이유는 이들은 함께 모이면 사람을 칼로 죽이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창세49,7) 7 포악한 그들의 격분, 잔악한 그들의 분노는 저주를 받으라. 나 그들을 야곱에 갈라놓으리라. 그들을 이스라엘에 흩어 버리리라.

 

레위와 시메온은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노여움으로 인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분노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메온과 레위를 이스라엘 지파들 나누어지게 하고 흩어지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나누어지게 한다는 것은 두 지파가 절대 같이 있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고, 흩어지게 한다는 것은 한곳에 모이지 못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과연 이것이 과연 축복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7절을 문자적으로만 보아도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 두 번씩이나 나옵니다.

또 르우벤의 경우에도 과연 이것이 그를 향한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만이 아닙니다. 17절에 단 지파의 경우에 길가의 뱀 오솔길의 독사. 말 뒤꿈치를 물어 그 위에 탄 사람이 뒤로 떨어진다.” 하는 것도 과연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야곱이 그렇게 사랑하고 마지막까지 놓으려 하지 않았던 베냐민에 대해서 27절에 물어뜯는 이리라고 하는데 과연 이것도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히 축복입니다. 28절에 이것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축복한 것이라고 두 번씩이나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치 저주와 같은 유언을 왜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야곱의 유언을 아들들이 듣고 돌이켜 회개하면 저주가 축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도박에 빠진 아들에게는 너 도박을 당장 끊지 않으면 너는 앞으로 패가망신하게 될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듣고 돌이켜 회개하면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레위지파를 보면 출애굽기 32장에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금송아지를 그를 인도한 하느님이라고 하면서 그 앞에서 뛰놀았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누구든지 야훼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레위 자손들이 모두 야훼 편에 섭니다.(탈출32,26)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레위자손들에게 허리에 칼을 차고 우상(偶像)의 편에 서 있는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죽이라고 합니다(탈출32,27). 그러니까 레위자손이 이날에 백성 중에서 삼천 명 가량을 칼로 죽입니다(탈출32,28). 이에 대해서 탈출기3229절에 “ “오늘 너희는 저마다 자기 아들이나 형제에 대한 대가로 주님을 위한 직무를 맡았다. 그분께서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빈다.” 고 합니다. 그래서 이 레위지파가 제사장 지파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상속 재산을 주지 않았다. 이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신 대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바로 그들의 상속 재산이시기 때문이다. (여호13,33). 그래서 이 레위지파는 가나안 땅의 마흔여덟 성읍으로 나누어지고 흩어집니다(여호21,41). 그렇게 나누어지고 흩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제사를 드리는 지파가 됩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야곱이 레위를 이스라엘 중에서 나누며 흩어지리다.’ 고 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레위지파가 제사장 지파로서 이스라엘 중에서 나누어지고 흩어진 것은 축복입니다. 처음에 레위는 분노로 칼을 잘못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레위지파는 회개하고 그 분노의 칼을 하느님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느님께서는 레위지파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레위지파에게 나누어지고 흩어짐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그런데 시메온 지파는 아버지의 유언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수기25장에 보면 시메온 지파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이방여인과 음행을 하다가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민수25,14). 그래서 결국 시메온 지파는 가나안땅에서 유다지파 가운데 한 부분으로 흡수되었습니다(여호19,1). 시메온 지파도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시메온 지파의 흩어짐은 저주였습니다.

그런데 레위지파의 흩어짐은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축복입니다. 또 우리가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도 축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주도 축복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오늘 창세기49장에 나오는 야곱의 유언과 축복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예언은 절대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유언은 장차 자손들이 당할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유언은 예언(預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의 예언이 거의 다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은 절대 운명이 아닙니다. 내 아들은 이렇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 운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듣고 돌이켜 회개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르우벤지파의 경우를 보면, 야곱은 르우벤이 권능이 탁월하지만 탁월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르우벤은 능력이 있지만 물의 끓음과 같이 절제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은 너는 물의 끓음과 같이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을 절제하지 못하였으니 네 능력이 탁월하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르우벤은 장자(長子)이지만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갔습니다. 그렇지만 르우벤과 그의 후손들은 야곱의 이 말을 듣고 힘이 있지만 절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1장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 할 때 그들은 얼마든지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절제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가운데서 가장 앞장서서 전쟁을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크게 복을 받는 지파가 되었습니다(여호22,6).

또 베냐민 지파를 보면, 베냐민에 대해서는 벤야민은 약탈하는 이리 아침에는 움켜쥔 것을 먹고 저녁에는 잡은 것을 나눈다.” 고 합니다. 왜 베냐민에 대해서 이렇게 야곱이 말했겠습니까? 베냐민은 막내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태어날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형인 요셉도 그의 곁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음식을 먹을 때 형들에게 빼앗길까 미리 챙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밤에 몰래 먹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냐민은 오직 자신만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베냐민이 이 유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느님만을 의지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랬을 때 나중에 모세가 벤야민을 두고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그는 주님 곁에서 평안히 산다. 주님께서 언제나 그를 보호하시니 그는 그분의 어깨 사이에서 산다.”(신명33,12). 고 합니다.

 어깨 사이가 어디입니까? 하느님의 등입니다. 또 하느님의 가슴입니다. 물어 뜯는 이리 같았던 베냐민이 이 유언을 듣고 하느님만을 의지했을 때 한 번도 어머니의 등에 업힌 적 없었던 베냐민에 대해서 하느님이 등이 되어주십니다. 한번도 어머니의 품에 안긴 적이 없는 베냐민에 대해서 하느님은 품에 안아주십니다.

이와 같이 예언은 절대 운명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너 그렇게 살면 당장 망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이때 돌이켜 회개하면 하느님도 돌이키십니다. 그래서 절대 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제키엘서 337절에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예언)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의 허물과 죄로 우리가 쇠퇴하게 되었으니 우리가 어찌 살리요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하느님은 “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돌아서라. 너희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11) 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시대 하느님의 백성인 유다와 이스라엘이 모두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나라가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우리가 이렇게 하느님의 심판을 받았으니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너희가 죄로 인하여 멸망을 했지만 지금이라도 말씀을 듣고 돌이켜 회개하면 너희를 다시 살게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에제33,13-16) 13 내가 의인에게 반드시 살 것이라고 하였어도, 그가 자기의 의로움만 믿고 불의를 저지르면, 그의 의로운 행위는 하나도 기억되지 않은 채,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을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악인에게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하였어도, 그가 자기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여, 15 담보로 받은 것을 돌려주고 강도 짓으로 뺏은 것을 배상하고, 생명의 규정들을 따르면서 불의를 저지르지 않으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16 그가 저지른 죄악은 하나도 기억되지 않는다. 그 대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였으니 반드시 살 것이다.’

 

내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과거에 의롭게 살아도 현재에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악인입니다. 그래서 의인(義人)이라도 악인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과거에 잘못 살아도 하느님의 말씀 듣고 돌이켜 회개하면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악인(惡人)라도 의인이 됩니다.

이 말씀대로 내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아도 현재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살아서 지금 내가 유다백성들처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더라도 그것을 운명처럼 여기지 말고 언제든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는 삶을 살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회복시켜주고 일으켜 주시고 살려주실 것입니다.

 

둘째, 야곱의 유언과 축복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분량대로 축복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8절을 다시 보면 이들이 모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다. 이것은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 각자에게 알맞은 복을 빌어 주면서 한 말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절대 우리의 행위대로가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느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입니다.

요셉은 열매 많은 나무 우물가에 심긴 열매 많은 나무. 그 가지가 담장 너머로 뻗어 간다.”하며(22) 그에게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모두 받을 것이고 자신만 아니라 자손들까지 이런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야곱이 축복합니까? 요셉이 그 많은 복을 받을 그릇이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처음부터 그의 자손 가운데 왕이 나올 그릇도 예수님이 나올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며느리를 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보고 그는 나보다 옳다고 했습니다. 또 유다는 요셉을 애굽에 팔자고 했던 사람입니다(창세37,26-27). 그런데 나중에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서라도 야곱이 요셉을 만나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왜 내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까? 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께 복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가 그 복을 받을 그릇이 준비되었느냐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도 귀도 다 하느님께 있습니다.

하느님이 보실 때 부()를 주시려 해도 그 사람이 부를 받을만한 그릇이 되지 않으면 절대 부를 주시지 않습니다. 부를 온전하게 사용할 그릇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부가 주어지면 그 부는 도리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권력(權力)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을 바르게 사용할 그릇이 준비되지 않는 자에게 권력도 진정한 복이 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느님의 더 풍성하신 복()을 누리기 위해서 믿음의 그릇이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신명1,31-33) 31 너희는 마치 사람이 제 아들을 업고 다니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이곳에 다다를 때까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줄곧 너희를 업고 다니시는 것을 광야에서 보았는데, 그 광야에서도 그렇게 싸워 주셨다. 32 그런데도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 33 너희가 천막을 칠 곳을 찾아 주시려고, 또 너희가 갈 길을 보여 주시려고, 밤에는 불 속에서, 낮에는 구름 속에서 앞장서 가시는 주님을 너희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광야를 지냈지만 왜 모세는 그를 품에 안으시는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들을 안으시는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한 이유는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하느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를 안아주시는 하느님을 믿었을 때 그를 안아주시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편81,1) 11 내가 주님, 너의 하느님이다. 너를 이집트 땅에서 끌어 올린 이다. 네 입을 한껏 벌려라, 내가 채워 주리라.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입을 크게 열고 더 큰 복을 바랍시다. 그래서 이 땅 가운데서 하느님의 복을 흘려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고난도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일 좋은 축복은 요셉이 받은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요셉과 같이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고 그 가지가 우리 집만 아니라 담장을 넘어서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복이 있으며 위로 하늘의 복을 받고, 아래도 이 땅의 복도 받고, 자녀의 복도 있고, 또 우리에게 주신 복이 조상들에게 주신 복보다 더 풍성하며, 그 복이 자손 대대로 더 풍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주어진 복은 모두 고난 가운데 피어난 복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3-24절에 “23 궁수들이 그를 어지럽히고 그에게 활을 쏘며 덤벼들었어도 24 그의 활은 든든히 버티고 그의 손과 팔은 날쌔었다. 이는 야곱의 장사의 손, 이스라엘의 목자요 바위이신 분의 이름 덕분이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17살까지 형제들이 그를 학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학대했습니다. 심지어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도리어 더 굳세었습니다. 그의 팔은 더 힘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느님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석이시고 목자이신 하느님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고난의 모든 시간을 말씀으로 채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05편에서 “18 사람들이 족쇄를 그의 발에 채우고 쇠사슬을 그의 목에 감았다. 19 마침내 그의 말이 들어맞아 주님 말씀이 그를 증명해 주시니 20 임금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풀어 주고 민족들을 다스리는 이가 그를 놓아 주었다.”고 합니다.

요셉은 고난이 있으면 있을수록 삶의 뿌리를 하느님에게 두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항상 생수의 근원이신 하느님에게서 힘을 공급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하느님의 샘 곁에 무성한 가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고난 가운데에서도 오직 생수의 근원이신 하느님에게 뿌리를 더 깊이 내려서 고난의 모든 시간을 말씀으로 채워서 고난이 도리어 축복이 되는 삶을 살아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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