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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삼위일체를 모르면 사랑도 모른다.
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3-06-04 조회수461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3년 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삼위일체를 모르면 사랑도 모른다>

 

 

 

 

복음: 요한 3,16-18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 헨리의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가난한 남편은 가보로 내려오는 손 시계를 팔아 아내를 위해 머리 빗을 삽니다. 아내는 자기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을 위해 시곗줄을 장만합니다. 그리고 성탄절 이브에 서로 선물을 교환할 때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됩니다. 분명 그렇게 사랑하는 자녀가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16)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1,27)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복수성은 이렇듯 성경 대로라면 남자와 여자의 관계 안에서 찾아질 수 있습니다.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관계는 ‘나-선물-너’의 관계로 이루어집니다. 선물 안에는 나의 존재가 들어갑니다. 내가 어떤 선물을 누군가에게 주었는데 그 사람이 그 선물을 하찮게 여기고 쓰레기통에 버리면 나는 기분이 상당히 안 좋을 것입니다. 내가 마치 그 선물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기분이 느껴질 것입니다. 내가 선물은 아니지만 그 선물 안에는 나도 어느 정도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선물은 상대도 나에게 선물하게 하는 힘을 지닙니다. ‘나’가 하느님 아버지시라면 ‘너’는 성자이십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이 들어있는 선물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선물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십니다. 이렇게 나(1), 너(2), 선물(3)의 세 조건이 갖춰져야 관계가 맺어집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바닷물을 조개껍데기로 자신이 판 웅덩이에 붓고 있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아이는 아우구스티누스 주교에게 “하느님의 신비를 인간의 머리에 퍼 담으려고 하는 것이 더 어리석은 것 아니겠습니까?”하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인간이 하느님 삼위일체 신비를 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도 되지만, 더 긍정적으로는 인간의 작은 머리에도 어느 정도는 담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 방울의 바닷물이 짠 것을 알면 전체 바닷물도 짤 것이란 상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는 아닐지라도 삼위일체 사랑의 법칙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다를 이해하기 위해 바닷물로 채워야 하는 웅덩이는 남녀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랑의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홀어머니에게서 자라 아버지가 어머니를 어떻게 사랑해주는지, 또 어머니가 아버지께 어떻게 사랑에 보답하는지를 보지 못했다면 그 아이는 어디에서건 이 삼위일체 사랑의 신비를 보고 배워야만 합니다. 아이가 늑대에게 키워져서 본인이 늑대의 사랑을 받고 늑대인 줄 알고 그래서 늑대가 사랑하는 방식만을 추구한다면 인간 사회에서는 살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인 줄 알고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신 그 하느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사랑이 되시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삼위는 한 하느님이십니다. 세 신들이 아니라, 세 위격이신 한 하느님, 곧 ‘한 본성의 삼위’에 대한 신앙을 우리는 고백합니다.”(CCC, 253) 

삼위일체 신비에서 가장 중요한 세 단어는 ‘본성’(natura), ‘위격’(persona), ‘관계’(relatio)입니다. 위격은 ‘분’이라는 말과 같은데 ‘삼위’는 ‘세 분’이란 뜻입니다. “한 분 하느님을 믿는다”라고 말하면 일신론 이단이 됩니다. 그리고 나와 너, 그리고 선물이 있어야 합니다. 선물은 ‘관계’의 기본입니다. 서로 자신을 내어주어 선물이 되지 않으면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위일체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성’은 하나여야 합니다. ‘한 하느님’이 되신다는 말이 삼위일체란 말의 ‘일체’입니다. 세 분이 마치 나이 든 하느님 아버지, 젊은 예수님, 비둘기의 성령을 ‘동시에’ 그림에 그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도 이단입니다. 그 안에서는 신성이 셋이 되어 한 본성이어야 하는 교리에 어긋납니다. 

 

 

    창조는 이 삼위일체의 사랑에서 나오는 ‘은총과 진리’로 이뤄집니다. 자동차를 만들려면 설계도와 땀이 필요합니다. 땀이 은총이고 설계도가 진리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으로 자신이 부모와 같은 본성임을 압니다. 그래서 부모처럼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때 찾게 되는 것이 진리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진리입니다. 부모의 삼위일체 사랑을 보고 자신도 그 사랑을 본받아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하느님 삼위일체의 모델을 기반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지 다른 사랑의 모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삼위일체를 이해함이 사랑을 이해함 임을 잊지 말고 내가 맺는 모든 관계가 삼위일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 곧 삼위일체만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https://youtu.be/0-t-Z6Fx45I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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