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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9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6-07 조회수285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9주간 수요일] 마르 12,18-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들은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삶을 살던 사람들입니다. 권력과 재물을 얻을 수만 있다면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부활과 내세의 삶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이 실제로 있다면 자기들은 하느님의 심판과 징벌을 피할 수 없을테니 부활이 없었으면 좋겠고, 또 없어야만 했던 겁니다. 그래서 공공연하게 부활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시며, 당신께 대한 믿음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놀라운 권능을 부정한 것입니다. 또한 다른 이들이 주장하는 부활이라는 개념을 그저 죽은 사람의 목숨을  다시 살려 그를 죽기 전의 생활로 되돌려 놓는 ‘소생’과 ‘복귀’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 사고방식 안에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수혼법’을 근거로 왜 부활이 없는지, 사람들이 믿는 부활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며, 정말 부활이 있다고 하면 우리 삶에 얼마나 곤란한 일이 생기겠는지 예수님을 설득하려고 듭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 일곱 남자의 아내였던 여인이 부활하면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느냐고, 그런 곤란하고 난감한 일들이 많이 발생할테니 부활은 없다는, 아니 없어야만 한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그들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만 신경쓰느라 성경 읽기와 기도 같은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게을리하였고, 그로 인해 하느님의 뜻과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해 그런 허무맹랑한 오해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탈출기 3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느님의 뜻과 능력을 생각하지 않고 유한하고 부족한 인간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두 그저 ‘죽은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우리 모두가 당신 사랑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생각한다면, 또한 우리를 죽음의 수렁에서 끌어올려 당신 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수 있는 그분의 무한한 능력을 생각한다면 그들도, 그리고 우리도 모두 하느님 안에서 살아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능하신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 다시는 죽음을 겪지 않고 그분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려면, 하느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만나 삶과 행동으로 그분과 관계를 맺는 ‘살아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경 안에서만, 전례 안에서만 나와 상관없는 ‘돌아가신 하느님’으로 그분을 만나고 끝나는게 아니라, 일상 가운데에서 사람들 안에서 나와 직접 관계를 맺고 소통하시는 ‘살아계신 하느님’으로 그분을 만나야, 그리고 내가 만나는 하느님을 사랑과 봉사와 순명의 정신으로 섬겨야, 그분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과 사랑을 가득히 받아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될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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