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9주간 금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6-08 조회수643 추천수3 반대(0)

지난 2월에 LA에 왔을 때 신부님을 한 분 만났습니다. 유학 중에 공부하면서 한인성당의 미사를 도와주었습니다. 신부님은 무척 바쁘셨습니다. 공부도 해야 하고, 미국성당에서 주일과 평일 미사를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작년 12월부터 한인성당의 미사를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LA 교구에서는 신부님께 한인성당의 사목을 정식으로 제안하였고, 신부님은 미국성당을 나와서 한인성당의 사제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학교 공부도 다 마쳤고, 이제 한인성당의 사목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을 두 번 만났지만 말씀과 행동이 참 겸손하였습니다. 오랜 수도생활 속에서 얻어진 영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겸손과 영성으로 신부님께서 뿌리는 말씀의 씨앗이 풍성하게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교우들도 하느님 품으로 가신 전임 신부님께서 영성이 깊은 사제를 선물로 보내 주셨다고 기뻐하였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진리의 협조자 성령을 보내 주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신부님을 보면서 3년 전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20208월은 코로나 팬데믹이 정점에 이를 때였습니다. 신문홍보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때 부르클린 한인성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한국에 가셨는데 11월까지만 미사를 도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미사를 도와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가신 신부님은 건강이 악화되어서 다시 본당으로 복귀할 수 없었습니다. 부르클린 교구는 제게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부르클린 한인성당 미사를 도와주도록 제안을 하였고, 저와 서울대교구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부르클린 한인성당을 정식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주일미사만 도와드렸는데 지금은 사목회도 함께하고, 야유회도 같이 갑니다. 장례미사와 연도도 같이합니다. 팬데믹이 풀리면서 신문홍보를 갈 때면 주일미사를 손님신부님께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신부님처럼 겸손하거나 영성이 깊지 않아서 많이 부족하지만 3년 동안 교우들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본당신부와 손님신부는 분명 다릅니다. 본당신부는 책임과 권한이 있습니다. 본당신부는 성사를 거룩하게 집전해야 합니다. 본당의 재정을 충실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신자들의 고민과 아픔을 경청해야 합니다. 함께 사는 수도자와 동료사제들과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본당신부가 권한만 내세우고 책임에 소홀하다면 나쁜 소작인이 될 것입니다. 손님신부는 권한은 없지만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과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일에는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지금 본당신부가 없는 공동체에게 깊은 위로와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본당신부와 손님신부는 직책에는 차이가 있지만 하느님께서 맡겨 주시는 사명은 같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모든 사제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예전에 어른들이 다투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툼의 원인과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제 귀에 들렸던 말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너 몇 살이냐?’ 그러자 조금 젊은 분이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나이가 벼슬입니까?’ 어른을 잘 섬기고,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시비를 가리는 기준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가끔 그런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구교우 집안이라는 말, 세례를 받은 연도가 빠르다는 말, 교육을 받은 기수가 빠르다는 말, 성직자 집안 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분들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옳고 그름을 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은 길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느님께 얼마나 충실한가를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린 다윗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린 다니엘을 선택하셔서 수산나의 무죄함을 밝혀 주셨습니다.

 

진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진리는 배움의 깊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진리는 직책을 가리지 않습니다. 진리는 어느 곳에 있어도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진리 앞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은 교만함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겉모습만 보기 때문입니다. 본당신부와 손님신부라는 직책이 본질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구약에서 이야기하는 다윗도, 구약의 권위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보다 더 권위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하느님과 직접 소통하시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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