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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분노가 하고 싶은 말: “너도 날 무시해?”
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3-06-14 조회수413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3년 가해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분노가 하고 싶은 말: “너도 날 무시해?”>

 

 

 

 

복음: 마태오 5,20ㄴ-26

 

 

 



LORENZETTI, Pietro 작, (1325)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BEEF)은 분노가 왜 생기는 것일까? 또 분노는 꼭 나쁜 것일까? 등을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입니다. 재미교포 대니 조는 모든 일이 잘 안 풀리는 도급업자입니다. 대니 조 자신은 돈도 없고 미래도 보이지 않으며 부모님은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한국으로 돌아가 일하게 되었고 하나밖에 없는 동생 폴은 게임과 코인에 빠져있습니다. 대니는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느 날 대니가 대형 할인점에서 계속 반품을 반복하다 영수증이 없어 반품이 안 되자 되는 일이 없다며 짜증을 내고 화를 냅니다. 그러던 중 주차장에서 흰색 벤츠와 시비가 붙습니다. 상대 벤츠는 위협을 가하고 도망을 칩니다. 가뜩이나 화가 나 있던 대니는 시비를 건 차에 보복하려 부촌의 정원을 엉망으로 만들며 쫓습니다. 


    벤츠에 탔던 사람은 중국계 사업가인 에이미입니다. 그녀는 가난하게 자랐지만 부유한 일본계 도예가 남편을 만나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남편 대신 평생 일을 하고 온갖 간섭하는 시어머니와 자신보다 돈이 더 많은 갑질하는 이들에게 짓눌려 삽니다. 남편은 아내의 스트레스 사정을 들어주지 않고 그저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라며 아내를 어리석은 사람 취급합니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대니와 주차장에서 시비가 붙은 것입니다. 


    둘은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합니다. 그런데 결말에는 화가 난 사람만이 화가 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갑니다. 두 사람은 크게 다치고 외딴곳에 떨어져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입니다. 둘은 마치 땅처럼 낮아지고 겸손해집니다.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느낍니다. 둘은 살기 위해 협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탈진 상태에서 둘은 “내가 누구지?”라고 할 정도로 서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이가 됩니다. 내가 상대의 감정을 알아주고 상대가 나의 감정을 알아줌으로써 사랑이 싹트게 된 것입니다. 화는 아직 잃을 것이 남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이들의 분노가 언제 생겨난 것인지를 묻습니다. 분명 둘이 주차장에서 마주쳤을 때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이미 분노에 가득 차 있었는데 그것을 터뜨린 계기가 되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방법으로 분노를 조절하라 말합니다. 그렇지만 정작 왜 분노가 생기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분노는 내가 행복해야 할 존재인데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정입니다. 다시 말해 분노 안에는 “내가 누군지 알아?”, “너도 날 무시해?”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원숭이 두 마리에게 오이를 줍니다. 원숭이들은 잘 먹습니다. 그런데 한 원숭이에겐 오이를 주고 다른 원숭이에겐 포도를 줍니다. 원숭이는 오이보다 포도를 열 배는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잘 먹던 원숭이는 분노합니다. 오이를 주는 사람에게 집어던집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누군지 알아?”, “너도 날 무시해?”


    오늘 복음에서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재판에 넘겨진다는 말은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라는 말처럼 살인자로 여기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화를 내고 살인까지 하게 되는 데는 결국 내면 안에 있는 불만족 때문입니다. 그 불만족은 낮아진 자존감에서 비롯됩니다. 열등감 자체가 화입니다. 자존감은 사랑으로 생깁니다. 소중한 존재임을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연세대학교 권수영 교수에게 어떤 자매가 찾아왔습니다.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이유 없이 화가 난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차려주면 자꾸 흘린다는 것입니다. 권 교수는 그 자매에게 이유 없는 분노는 없다고 말합니다. 어릴 적 혹시 그와 비슷한 상처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밥 먹는 시간이 그리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우유를 흘렸다가 엄마에게 따귀를 맞고 코피를 흘렸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펑펑 울었습니다. 


    오늘 복음도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산상설교의 연속 선상에 있습니다. 행복하다면 화가 날 일이 없습니다. 행복하여지려면 그리스도처럼 되라고 하십니다. 나의 정체성이 그리스도라면 화가 날 일이 없습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만이 우리를 살인의 감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로 삽니다.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 “너도 날 무시해?”라는 분노는 나오지 않습니다.      물 위를 걷는 사람이 모터 보트나 수상 스키를 타는 사람을 보고 화가 날 일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을 지녔습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믿음만이 진정 우리를 분노에서, 그리고 이웃에게 악한 일을 벌이지 않게 되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맙시다.



 https://youtu.be/aJb1awKnmcM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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