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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7-06 조회수457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마태 9,1-8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개신교는 하느님께서 교회에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고해성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오직 하느님만이 갖고 계시는 유일한 권한인데 그 귀한 것을 미약한 인간들의 손에 맡기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는 또한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직접 먹고 마시라고 우리에게 내어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성체성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당신의 그 귀한 몸과 피를 그저 먹으라고, 소화되고 나면 사라질 비천한 음식으로 삼으라고 주셨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오해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데에서 생깁니다. 사람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자기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어하는데,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이라면 당연히 당신께서 너무나 사랑하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려고 하시지 않을까요?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하느님과 거리를 두는 것이야말로 그분의 선한 뜻을 왜곡하고 거스르는 ‘신성모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신성모독의 죄를 뒤집어씌우는 율법학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습니다. 평범한 사람 주제에 어떻게 감히 하느님께만 유보된 ‘용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권한을 침범하는 그런 행위는 그분의 자리를 빼앗고 신성을 모독하는 큰 죄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예수님을 단죄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지켜드리는 거룩한 행위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그 반대였습니다. 주인에게 받은 한 탈렌트를 그저 땅에 묻어두었던 그 게으른 종처럼, 하느님께서 잘 사용하라고 주신 용서의 권한을 열심히 행사하지 않고 위선이라는 땅 속에 묻어두었기에, 화해라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판단 비난 단죄 같은 날카로운 가시들로 다른 이들을 아프게 찌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바라신 하느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지요.

 

권한은 제대로 실행해야 비로소 참된 권한으로 인정받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용서라는 엄청난 권한을 열심히 행사하지 않고 미움 저편에 묻어두기만 한다면 그건 귀중한 권한을 받은 이의 도리가 아니지요. 우리에게 맡겨진 용서라는 권한은 용서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는 ‘선택권’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끼게 하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실행권’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아서 나에게 잘못한 이들을 죄의 속박에 그대로 묶어둔다면, 나는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처럼 점점 더 깊은 멸망의 구렁으로 빠져들게 될 겁니다. 그러니 더 이상 버티거나 미루지 말고 내 마음 속 그 원수를 용서합시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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