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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떤 땅이 좋은 땅일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7-26 조회수498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의 비유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어려운 내용의 복음이 아니고 무학인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내용의 복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복음입니다. 왜 그런가를 한번 묵상해보겠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아주 간결하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이끌어내는 도출 과정이 비교적 길면 내용이 좀 더 우리 피부에 더 가까이 다가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런 공극을 메우기 위해 단순하게 결론을 맺고 그 나머지 공간은 우리가 묵상으로 채워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한국사와 세계문명사에 관한 건 더더욱 관심이 많습니다. 사실 이런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물질적인 도움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몰라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 외에도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왜 관심을 가지게 될까요?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어떤 물질적인 것이나 아니면 어떤 결과물이 자기에게 주어져야만이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 게 아닐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다양한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세상을 보는 시야의 폭이 넓어지고 그에 맞게 사고의 폭도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는 이런 관점에서 복음을 한번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어떤 씨앗이 땅에 뿌려져 열매를 맺는다면 토질이 좋고 나쁜가에 따라 열매가 맺어지는 결과가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토양 외에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좋은 땅’이라고 하는 땅을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조금 탈피해서 생각해봤습니다. 그냥 좋은 땅 아니면 나쁜 땅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복음에서 우리가 묵상하는 범위가 약간은 제한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땅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토질이 좋아서 좋은 땅으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경남 창녕이 집인 고등학교 동창이 있습니다. 창녕하면 양파 농사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예전에 친구 몇몇이 친구 집 농사일을 조금 도와 줄 일이 있어서 경험한 일이 있습니다. 친구 집에 밭이 아주 많이 있는데 이게 군데 군데 조금 떨어져 있었습니다. 양파 수확철이었습니다. 같은 종자로 원래는 심었는데 실제 수확을 할 때 보면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것도 봤습니다. 제가 농사꾼도 아니지만 문외한인 제가 봐도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토질이 비옥하면 양파 굵기부터서 달랐습니다. 마치 예전에 우량아 선발대회에서 우량아처럼 말입니다. 우연히 친구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친구 아버지께서 유독 아끼는 땅이 있다고 합니다. 그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어렵더라고 하더라도 다른 땅은 몰라도 그 땅만큼은 매매를 하지 않을 거고 후손한테 물려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땅인만큼 애지중지 소중하게 생각하는 땅이라 다른 땅보다는 좀 더 많은 신경을 쏟아부은 땅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라서 좋은 땅이 된 게 아니고   조상의 땅이라고 생각해서 소중히 가꾸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열심히 좋은 땅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셨기에 그 땅이 비옥한 땅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날 그간 친구 아버님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오늘 복음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좋은 땅은 그냥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듯 그렇게 얻어지는 게 아닐 것입니다. 좋은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공이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공은 여러 종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비유에서 씨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신부님의 강론이 됐든 세상의 강연이 됐든 똑같은 내용을 들었는데도 누군가는 감명 깊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예수님의 말씀이 주옥 같은 말씀이라도 그 말씀이 그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좋은 말씀이라고 치부하고 듣는다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우리의 마음 밭에서 싹이 틀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오늘 복음 말미에 나오는 말씀처럼 여러 곱절의 결과를 맺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결국은 자신이 좋은 씨앗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밭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 밭은 제 친구 아버지께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의 가치 때문에 좀 더 신경을 써서 가꾼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우리의 마음 밭이 비옥한 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 방법 가운데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오늘 복음과 관련해서 하나만 집중해서 묵상한 게 있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관찰한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분들이 어떻게 땅을 관리하는지 말입니다. 물론 비료도 주고 해서 비옥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당연한 일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쉽게 표현해서 흙을 잘 파고 잘 골고루 섞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반복이 돼야 딱딱하게 굳어서 엉켜 있는 땅이 골고루 혼합이 돼서 좀 더 부드러운 흙으로 변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비료만 준다고 해서 토질이 비옥한 토질로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좋은 땅인 우리의 마음 밭도 이처럼 이래저래 뭉쳐진 근육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것을 부드럽게 잘게 잘게 흙이 부서져야 하듯이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온화한 마음으로 바꾸려고 하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의 마음 밭이 천국의 땅으로 변화가 돼 하느님의 생명의 기운이 우리 마음 밭에 뿌려진 씨가 잘 자라 거대한 거목으로 변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없이는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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