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02 조회수733 추천수6 반대(0)

2년 동안 열심히 나오던 형제님께서 2달 정도 성당에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모두들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형제님은 기타 반에서 활동하였고, 본당 행사에 기타연주 봉사를 하였습니다. 사진에도 조예가 있어서 본당 행사에 사진을 많이 찍어 주었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사진을 찍어 주었고, 가끔은 액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형제님이 성당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추측들도 있었습니다. 신자들이 보내는 문자를 확인하지만 답변은 없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단톡 방에서도 나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걱정이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형제님의 답변은 교우들의 추측과는 달랐습니다. 5월부터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지만 별 이상은 없다고 하는데 몸은 계속 안 좋아서 치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건강이 좋아지면 다시 나오겠다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사는 맛과 사는 멋이 있다면 그런 것 같습니다. 걱정하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사는 맛과 멋입니다. 저의 문자에 답장을 보내준 형제님이 건강을 회복하여 밝은 모습으로 공동체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안식년 중인 후배 사제가 신문사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냉장고에 보니 과일이 가득 있어서 물어보았습니다. ‘웬 과일이야?’ 후배 신부님에게 과일의 사연을 들었습니다. 작년에 사랑하는 딸을 먼저 세상에 보낸 부부가 있었습니다. 사목회장으로 봉사하였고, 매일 아침미사에 참례하였는데 딸을 먼저 하느님 품으로 보낸 후에는 상심이 크셨는지 한동안 두문불출하였습니다. 후배신부님은 어찌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부부의 집을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조카 이야기도 해 주었다고 합니다. 조카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몸의 반이 마비가 와서 재활치료 중이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처럼 신부님은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부부는 신부님의 방문에 큰 위로를 얻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부부를 알았지만 제가 미사를 도와주는 성당의 교우분도 아니고, 직접 찾아가서 위로할 수 있는 성격도 못 되었기에 걱정의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후배 신부님은 안식년 중임에도, 전혀 연고가 없음에도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공감하였고, 직접 찾아가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사는 맛과 사는 멋이 있다면 그런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했는데 그분들이 하느님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서 아들을 얻었습니다. 후배 신부님은 이웃을 위로하고 과일을 받았습니다. 선한 일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행하고, 악한 것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행하지 말라는 말이 제 마음에 죽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우리는 세례를 받아 신앙인이 되지만 그 신앙은 교회의 것이지 아직 나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많은 분들이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례할 때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신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성당 문을 나서면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는 신앙이 교회의 것으로 머물러 아직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성직자와 수도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의 신앙을 자신의 것으로 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를 믿거나 미사 참례와 기도의 의무 등을 준수하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며, 공동체가 공유하는 삶의 비전과 가치관에 동의하는 것이고, 공동체가 제시하는 윤리적인 삶을 자기 것으로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이란 과거의 삶과의 결별을, 과거에 쫓았던 이념과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냉담을 접고 다시금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주일 미사에 다시 참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새로운 삶이며, 과거와 결별하는 고통을 동반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오늘 나의 신앙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천사들에 의해서 의로운 삶을 인정받아 하느님의 대전으로 초대되는 삶인지, 쭉정이 삶이 되어서 마지막 날에 버려지는 신앙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하느님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사옵니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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