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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04 조회수298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 마태 13,54-58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자주 경험하여 잘 알고 익숙해진 대상은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에 좋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기에 더 나은 삶을 사는데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걸 잘 알면서도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안주하려고 듭니다.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숫자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객관적 지표를 제시해도 ‘요지부동’입니다. ‘낯선’ 것에서 느끼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숙달되어 다시 이만큼 익숙해지려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굳이 새로운 것으로 바꾸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런 점은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새 가죽부대’를 거부하고, 오래 곁에 두어 익숙해진 세상의 ‘헌 가죽부대’를 고집한다면, 세속이 주는 익숙함에 길들여져 복음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전하는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따르기를 자꾸만 나중으로 미룬다면, 예수님 말씀은 늘 거기서 거기인 뻔한 소리로, 세상 물정 모르는 철 없는 소리로, 곧이곧대로 실천했다가는 쫄딱 망할 큰일 날 소리로, 자꾸만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잔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면 말씀이 진부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날 미사 복음 말씀이 평소보다 길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게다가 그날 사제의 강론마저 길어지면 짜증 가득한 얼굴로 계속해서 시계만 보게 됩니다.

 

우리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 안에는 우리가 정말 듣고 싶어하는 재물의 축복이 없고, 우리가 정말 보고 싶어하는 성공의 비결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마을인 나자렛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심오한 지혜,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기적들에서 드러나는 놀라운 능력에만, 그리고 그것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자기들도 그런 능력을 갖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능력을 가지기만 한다면 저 별 볼 일 없는 목수의 아들보다 내가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무지 그 ‘출처’를 알아낼 도리가 없었기에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자신은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저 예수라는, 나보다 하나도 나을게 없어 보이는 자가 가지고 있으니 질투심이 생기고 그런 감정이 곧 미움과 배척이라는 태도로 드러나는 겁니다.

 

신앙은 하느님 뜻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이것저것 복잡하게 재거나 따지지 않고 일단 한 번 믿어보는 단순한 마음입니다. 자기 취향과 기호에 따라 주님 말씀을 재단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 안에 받아들이고 의미를 곱씹어보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것을 따르는 게 귀찮고 힘들지라도, 그것을 따르는 과정에서 손해나 희생을 당하더라도 단단히 붙잡고 끝까지 놓지 않는 우직한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신 지혜와 놀라운 능력은 바로 이런 마음가짐에서 온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은 그저 듣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며 따르고 감당하는 노력이 우리를 하느님을 닮은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시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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