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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서 말하는 판단과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판단의 의미 차이점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19 조회수542 추천수2 반대(0) 신고

 

제가 국내 저명한 신학자 신부님께 여쭤봤습니다. 제가 여쭤본 내용은 거대한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분께 여쭤본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에 대해 좀 더 설득력을 싣기 위해서입니다. 여쭤본 내용은 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누구나 아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남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 말입니다. 제가 전에 이 내용에 대해 신부님께 먼 지방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직접 찾아가서 여쭤봤습니다. 저는 그때는 제가 복음에서 말하는 판단에 관한 그 내용에 관해 먼저 제가 가지고 있는 복음 말씀에 대해 말씀드린 후에 이 내용이 맞는지 아니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신부님의 견해를 듣고 싶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오히려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며칠 전 성모승천대축일 날에 부산가톨릭대학 어떤 교수님이 인터넷에 올린 글 가운데 문해력을 다룬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글을 굿뉴스를 애용하는 신자분들은 한 번쯤은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오늘 왜 이런 글을 올리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 올린 글 가운데 자칫 잘못 보면 많은 분들이 제가 남을 판단한 내용에 대해 글을 쓴 걸로 오해 아닌 오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런 걸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좀 더 복음 말씀에 나오는 판단을 하지 마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를 할 필요도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자세히 읽어보지 않으면 남을 비판한 것처럼 여겨질 확률이 거의 90퍼센트는 될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볼 여지는 있다는 걸 인정을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제가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돼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맥 상호간 그 연결고리에서 제가 설명하는 상호관계를 잘 보면 남을 판단하는 내용을 언급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판단하지 마라 할 때 이때 판단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개종 후 많은 영성서적과 교부들의 책을 통해서 우리가 아는 단순한 사전적인 뜻의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그 내용까지 설명을 하자면 내용이 아주 방대합니다. 여기서는 아주 핵심적인 내용만 언급하겠습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판단은 우리가 흔히 어떤 사실 특히 죄를 짓게 한다든지 어떤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게 그 사람을 평가하는 수준을 넘어 단죄까지 가게 됐을 경우에 우리는 그때 그런 상황을 가지고 판단을 하지 마라고 했을 때의 판단의 의미임을 잘 알아야 합니다. 희랍어까지 검색하지 않더라도 단순히 복음에서 말하는 판단이라고 한국어로 번역한 그 단어를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여러 버전의 영어성경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실제 복음에 나오는 판단 이 단어가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100프로 일치하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나마 그 단어가 가장 근접한 의미를 담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복음에서 말하고자 하는 그 내용과 뉘앙스를 그대로 전하고자 한다면 의역적인 번역이 좀 더 길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면 우리는 실제 복음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예전하고 달라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글로 소통하는 시대가 말로 소통하는 것보다 더 많아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남과 소통을 제대로 원만하게 잘 하려면 글을 작성하는 사람도 언어를 잘 이해하고 잘 구사해야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 글을 읽는 사람도 문해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잠시 보시면 이 앞 글에서 제가 잘 하려면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하려면두 개를 띄어쓰기를 했습니다. 이것도 잘하려면으로 만약 붙여 적었을 때와는 미세한 의미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 이 의미를 잘 구분하기 힘듭니다. 이건 어법도 알아야 하고 또 두 단어의 의미 차이를 모르면 거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의미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말로 한다면 말에는 이런 것 같은 경우에는 잘 구분하기 힘들 겁니다. 이 내용을 말로도 그 차이를 이해하려고 하면 문맥적인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어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단어와 단어의 결합관계만을 가지고 해석하는 게 아니고 문맥을 통해 작성자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일지를 머리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읽어야 글쓴이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신경림 시인이 한 학교를 방문해 자신의 시에 대해 학교에서 출제한 문제를 풀어보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출제문제의 30퍼센트 정도만 맞추었습니다. 이 현상을 보며 우리는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시를 지은 본인이 그 시에 대한 내용과 의미를 더 잘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 시를 해석하는 사람은 시인의 눈으로 시인이 어떤 관점으로, 그 시를 지었는가에 관한 초점으로 그 시를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복음말씀을 전하고 또 성경말씀에 관한 글을 쓸 때도 이런 점을 주의하지 않으면 헛소리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고 정말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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