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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를 떠나며/미국 성당에서 느낀 점>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28 조회수409 추천수2 반대(0) 신고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를 떠나며/미국 성당에서 느낀 점>

 

 

미국의 서남부인 뉴멕시코주의 로스 알라모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타운입니다. 맑은 하늘과 구름은 미국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구름을 벗삼아 지내면서, 석양의 노을과 무지개를 바라보며 뉴멕시코주의 주도인 싼타페와 이곳에 예술가, 특히 미술을 하는 분들이 많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한인 성당이 없었기 때문에 40  일을 티없으신 성모 성심 성당인 미국인 성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곳 성당에서 우리나라와 좀 다르다고 느껴진 점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 8월 13일 주일에 미사를 참석할 때의 일입니다. 미사가 막 시작되려 할 시간에 한 남자분이 서너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와 그 밑의 여동생을 안고 제대 옆의 문으로 들어섰습니다.

이곳의 성당은 제대 옆쪽으로 문이 2개, 그리고 뒷쪽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문이 있습니다.

앞에서 2번째 줄에 아기들을 데리고 앉자, 처음에는 아기들이 보챘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좀 당황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옆의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을테니까요... 

그러나 아무도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좀 보채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자 자기들끼리 장궤틀 밑을 쳐다보며, 성당 바닥에 엎드려서 앞줄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의 의자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근거리며 놀고 있었습니다.

 

주의기도를 시작하자 아빠와 셋이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평화의 인사를 할 때에는 뒷줄에 있는 제게도 손을 내미는데, 정말 모습도 인형같이 예뻤지만 표정이 천사같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정경이었습니다. 아기 엄마가 산후 조리중이거나 피치 못할 일이 있나보다 하면서 제 나름대로 상상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얼마전에 함께 봉사를 했던 한 자매님이 회의 시간에 본당에서 미사중에 계속 소근 거리며 자기 어머니에게 말을 하는 자매가 있어서 분심든다고 이야기 하였더니 미사후에 화를 내면서 나갔는데, 그럴 경우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사랑이 담기지 않은 충고는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분심들게 한 행동이 잘못인데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분들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성당에서였다면 아빠가 아이들 두명을 데리고 앞좌석에 앉으실 분도 안 계시겠지만 아마 앉으려다가는 유아실로 가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문화의 차이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 주고 상관하지 않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해 주어도, 정말 자율적으로 잘 해나가는 대단한 분들이 많은 나라가  미국이고 그 힘이 자유가 많은 미국을 이끌어 가고 있구나 라는 점을 느꼈습니다.

미국성당에도 물론 유아실이 있지만 잘 사용하지 않고 부모님들과 함께 앉아서 미사를 드리지만, 유아나 어린이들도 비교적 조용한 편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관련하여 또 인상적이었던 광경은, 그만그만한 아이들 4명과 함께 또 임신한 엄마가 아이들을 다 데리고 평일미사에도 자주 나오는 모습입니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 때문이라 여겨져 존경스러워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3~4명되는 분들이 자주 눈에 뜨입니다.

 

주일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본당신부님께서 앞좌석의 몸이 불편하신 분들에게 다가 오셔서 악수하시며 환담 하시는 모습이 좋아보였습니다. 본당 신부님이신 요한신부님께서는 한국에서 주한미군으로 군복무를 1년간 하셨다며 제게 "안녕하세요?" 하시며 인사를 건네십니다. 그리고 주일 미사 후에는 신자들이 성당에서 나갈 때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며 일일히 주례 신부님과 환담을 나눕니다.

강론 시간에도 유머러스하게 말씀하시어 신자들이 깔깔 거리며 잘 웃지만 성작 봉헌을 받으시면서도 유머를 던지시어 신자들을 웃기십니다. 그렇다고 미사가 경건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영성체가 시작되어 신부님이 앉으실 때가지 장궤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당에 처음에 들어와서도 꼭 장궤하고 한참동안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또 인상적인 것이었던 것은 새벽미사에 말씀의 전례만 참석하고 가시는 형제님이 계셨는데, 아마 직장의 출근시간 때문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 신부님께서는 제의를 입으신 채로, 쭉 줄을 서서 신부님께 인사드리기를 기다리는 신자들과 일일히 악수하시면서 환담을 나누십니다. 

주일 오전 9시 미사후에는 도넛과 커피가 준비되어서 신자들이 함께 나누며 담소를 즐깁니다.

 

또 특기할만한 것은 한 번에 약 250~300 명(신자수는 1000명) 정도가  미사를 드리면서 양형 영성체를 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남여 구분 없이 교육을 받으신 많은 신자분들이 돌아가며 봉사하는 것 같았습니다. 거의 매번 성체분배자들이 바뀌었습니다. 성가대가 없지만 앞에 나와서 리드하는 음악 봉사자도 많은 신자분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이들이 나와서 진행할 때도 있었습니다. 

 

노 부부가 함께 성체조배실에서 성체 조배하시는 모습들도 좋아보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자유스러운 가운데 깊은 신심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미사가 없고, 종신 부제님이 말씀의 전례와 영성체를 하는 예식이 있습니다.  점심시간에도 미사나 말씀의 전례에 제복을 입으신 직업을 가지신 분들도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참석하는 모습에서 그분들의 깊은 신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평일미사 시간이 금요일에는 낮 12시 10분이고, 수요일에는 영성체 예식이 같은 시간에 있는 데, 어느 곳이나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타운이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도 성당에 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 외에는 새벽미사와 저녁미사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직장인들도 매일 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 로스 알라모스는 10여분 안에 타운의 모든 곳에 갈 수 있는 작은 타운이지만 평균 소득이 미국내의 10위권안에 들며, 주민의 20%가 백만장자(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뺀 자산이 10억원정도 되는) 라고 합니다. 

 

또 한가지 인상적인 것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칭찬을 잘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낯모르는 분들로 부터 4 번 칭찬을 받았습니다.

한 번은 길거리에서 낯모르는 부인으로 부터

 "당신의 스커트가 아주 아름답습니다." 라는 칭찬을 들었고

세 번은 성당에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요한 신부님께서 영후엄마를 보시더니(제가 영어를 잘 못하니까) 제가 신부인 당신보다 오래 성당에 머문다 하시며 저와 저를 따라 다니던 영후를 칭찬해 주셨고, 한 번은 뒷좌석에 앉았던 부인께서 본명을 물어 보시며 칭찬을 하시는 것은 알겠는데, 영어가 짧아, 잘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또 한 번은, 주일미사에서 제 앞좌석에 앉으셨던 부인이 성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사랑스러운 목소리라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아무튼 영업중인 큰 차를 몰고 가시는 분도, 처음보는 낯선 사람인 제게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은 인상적이고 그분들 나름대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지난 23일의 복음(마태 20,1-16)에 대한 말씀지기의 묵상글입니다.

 

 "일꾼들이 포도밭에서 같이 일한 동료들에게 화가 나게 된 것도 시기심 때문이었고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 땅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려면 '넉넉한' 정신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우리는 관대한 마음으로 창찬하고 칭송하며 인정해야 합니다.....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범이라는 붓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 주시려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인정과 칭찬과 격려를 갈망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주님의 관대함으로 빛나는 손과 발이 되기를 빕니다." 

 

여러가지 좋은 추억들을 마음에 담고 40일 정도 머물렀던 로스 알라모스를 떠나 딸내외의 새로운 부임지인 로체스터로 갈 예정입니다.

 

 

 

* 위의 글은 2006년에 쓴 글입니다.

지난 8월26일에 친구와 같이  영화 "오펜하이머"를 감상하며 2006년에 비교적 오래 머물렀던 로스 알라모스가 떠올랐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오지의 로스 알라모스의 국립연구소장으로 원자폭탄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정부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을투하하여 많은 사상자가 났지만 2차세계대전이 종식되고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됩니다.

 

오펜하이머는 여러가지 인간적인 약점을 지니기도하였지만, 뛰어난 지성으로 국립연구소 출신 연구원 9명이 노벨상을 수상하기도합니다. 특히 영화의 장면에서 실험하던 곳과 딸네 집의 검은 색 빌라는 연구소건립 초창기에 오펜하이머가 살았던 곳으로 나와 감회가 깊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로스알라모스성당의 본당 신부님께서 주한미군이셨던 것도 영화를 본 지금에서야  "연관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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