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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30 조회수369 추천수4 반대(0) 신고

230830.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마태 23,31)

 
오늘 <복음>도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한 불행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 바리사이들을 “회칠한 무덤”(마태 23,27)에 비유하십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생명의 본성을 뿜는 것이 아니라, 무덤의 냄새를 뿜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19,16)에 따르면, 무덤에 닿으면 칠 일간 부정하기 때문에 무덤을 회칠하여 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불결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회칠한 무덤과 같다’는 것은 그들이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고, 겉은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마태 23,27-28)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악”보다 더 추악한 것은 “거짓된 선”, 곧 “선으로 꾸며진 위선” 입니다. 마치 자신이 “선”인양 꾸미고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위선’ 중에서도 ‘종교적 위선’은 악취가 더 심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나 자선이나 단식, 혹은 미사나 전례나 성사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한다면 그럴 것입니다.
 
나아가서, ‘위선’(ùποκρισισ)은 단지 못된 속셈을 교묘한 방법으로 감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게 올가미에 씌우기도 합니다(예레 18,18). 실제로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그러했습니다(마태 22,18). 또한, ‘위선’은 자신을 완고하게 하고 자신의 탐욕과 방종을 위해 하느님을 두구로 삼고, ‘자신들이 의롭다고 여기기도 합니다.’(루카 18,9;20,20), 그래서 ‘눈 먼 길잡이’(마태 15,3-14)가 되어 잘못 가르치는 ‘나쁜 누룩’(루카 12,1)이 되기도 합니다. 혹 우리가 그러고 있지는 않는지 잘 들여다 보아야 할 일입니다.
 
앞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 먼 이들’이라고 부릅니다(마태 23,25-26). 눈을 부릎 뜨고 다른 사람들을 속이려고 애쓰면서도 정작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는 데는 눈을 감아버린, 그리고 오히려 빛을 핍박하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의 무덤은 꾸미면서도 실은 그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였듯이, 지혜이신 당신을 핍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듯 진실을 가려보지만, 진리는 가리고 있는 허울을 어김없이 벗기고 맙니다. 비록 어둠이 드러난 진실마저 덮고 조작하려 할지라도, 빛은 끝내 가려지지 않고 오히려 가림 막을 태우고, 감추어진 탐욕과 위선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더러운 속을 감추고, 겉을 그럴싸하게 꾸미고 치장하고 은폐하고 기만하고, 심지어는 조작하기도 하는 우리의 위선을 주님께서는 환히 아십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위선의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당신이 담아주신 마음 속 진리를 행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마태 23,31)
 
주님!
위선의 껍데기를 벗고 진리 편에 서게 하소서!
허물이 드러날까 두려워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제 손바닥을 치우게 하시고,
감추어진 탐욕과 위선을 드러내소서.
핍박과 폭행을 당해도 물러서지 않게 하시고,
불의에 대한 무관심과 침묵으로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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