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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9-14 조회수398 추천수6 반대(0) 신고

230914. 성 십자가 현양 축일.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요한 3,1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요한 3,16).
 
그렇습니다. 이 큰일을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셨습니다. 사실 ‘십자가의 형벌’은 손과 발이 못박인 채 철저히 무력해진 참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비참함의 끝이요, 노예 죄수에게나 행해지는 참으로 냉혹하기 짝이 없는 철저하게 버림받음이요, 그야말로 완전한 패배요,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을 자다’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저주받은 자가 되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갈라 3,13) 
 
그래서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이었습니다(1코린 1,23 참조). 그러나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코린 1,18).
 
오늘은 ‘십자가’에서 세 가지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십자가는 ‘죄인임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할 때라야 십자가는 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십자가를 피하고 도피하고 있는 것이라 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용서해야 할 존재’이기에 앞서, ‘용서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동시에, 나아가서는 죄인이라서가 아니라 ‘죄 없음에도 죄를 뒤집어쓸 줄을 아는 일’입니다. 이해받지 못하고 오해받고 곡해 받고 누명쓰는 일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둘째>는 십자가는 ‘죽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장소입니다. 곧 죽이는 일이 아니라 죽음 당하는 일이요,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일이요, 앞서는 일이 아니라 물러나는 일입니다. 승리하는 일이 아니라 패배당하는 일이요,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두리로 밀려나는 일입니다. 동시에, 나아가는 틀려서가 아니라 옳으면서도 지는 일이요, 힘 있으면서도 눌리는 일입니다.
 
<셋째>는 ‘타인을 위하여 건네주는 곳’입니다.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가 잘 되기를 바라며 하는 것이요, 그가 구원되기를 희망하여 자신을 건네주는 일이요, 사랑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승리요, 구원이 됩니다. 곧 십자가는 죽음이지만, 동시에 죽음을 죽이고 진정으로 참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무력함이지만, 구원을 이루는 전능함이 됩니다. 낮아짐으로써 진정 높아지며, 패배이지만 사랑의 승리가 됩니다. 지면서도 쳐부수며, 승리의 깃발이 되고 영광의 월계관이 됩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십자가는 우리 삶의 의미가 되었고, 역사의 역전이며 혁명이요, 하느님 사랑의 표상이며 완전한 승리의 표상이요, 현양이며 영광이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자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신 하느님 사랑이 바로 우리의 자랑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고백합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갈라 6,1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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