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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9-14 조회수354 추천수5 반대(0) 신고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요한 3,13-17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량하시려고 몸소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이름이나 지위를 세상에 높이 드러내는 행위를 ‘현양’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성 십자가 현양’이란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희생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이심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못박히신 십자가를 높이 들어 올리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높이 들어올려진다는 것은 영광과 축하를 받으며 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영전’과는 다릅니다. 반대자들의 폭력적인 손길로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못 박혀,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 앞에서 수치와 모욕을 겪는 극심한 고통이자 시련인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겪으시는 그 시련과 고통이, 그리고 참혹한 죽음이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스승님께서 모욕과 고통을 겪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참담한 죽음을 맞는건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크나큰 슬픔이자 괴로움인데, 오히려 그게 구원이라고 하시니 대체 무슨 영문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물음표가 가득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머무를 때 겪었던 ‘불뱀 사건’을 상기시키시면서 십자가 구원의 원리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땅으로, 참된 기쁨의 삶으로 이끌어 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분께 불평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처럼, 이집트에서 온갖 무시와 핍박을 받으며 고통 속에 신음하던 자신들을 구해내신 하느님께 ‘이집트에서 멀쩡히 잘 사는 우리를 왜 이런데 데리고 나와서 죽을 고생을 시키느냐’고 따진 것이지요. 하느님이 아니었다면 이집트에서 고통 속에 신음하며 종살이 하다가 맞아죽었을 그들입니다. 하느님의 보살핌과 사랑이 아니었다면 물도 양식도 없는 척박한 땅 광야에서 굶어죽었을 그들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덕분에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하지 않게 되니 마음이 나태해지고 믿음이 약해져 팔자 좋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그들의 나태함과 약해진 믿음을 바로잡으시고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맹독을 지닌 불뱀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불뱀에 물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되지요. 그러자 제 정신이 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와 살려달라고, 저 무시무시한 불뱀들을 자기들에게서 치워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 불뱀들을 치워주시지 않고 구리로 불뱀의 형상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으라고, 불뱀에 물렸을 때 그 구리뱀을 보면 살아날거라고 약속하십니다. 왜 불뱀을 없애주시지 않고 구리뱀을 쳐다보게 하셨을까요? 불뱀이라는 상징으로 표현되는 고통과 시련 자체는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할 ‘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나태함과 교만에 빠져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우리를 따끔하게 가르치는 하느님 사랑의 훈육 방식인 셈이지요. 만약 하느님께서 불뱀을 없애주시는 것으로 끝났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렸을 겁니다. 그러나 구리뱀이라는 상징을 통해 고통과 시련이라는 불뱀에 물려 힘들고 괴로워도, 나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그 믿음의 눈으로 고통을 바라봄으로써 그것을 극복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할 힘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그 ‘구리뱀’ 역할을 하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고통을 겪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당신의 소중한 외아들을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걸, 그런 사랑의 하느님을 굳게 믿고 따르면 누구도 멸망에 이르지 않고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걸 깨닫게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건 구리뱀이 아니라, 그 구리뱀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표징을 보여주신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참된 믿음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십자가 자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표징을 보여주신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따르는 참된 믿음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십자가를 어딘가에 매달아두는 부적이나 장식품으로 만들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나의 실천으로 그분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님이심을 ‘현양’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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