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가위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9-28 조회수601 추천수6 반대(0)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예전에 본당에 있을 때는 강론 대신 어르신을 모시고 덕담을 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오랜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슴이 따듯해지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오늘 저는 덕담으로 농부망서(農夫亡鋤)’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한 농부가 밭에서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을 본 아내가 호미를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물었습니다. 농부는 큰 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잃어버리지 않았어요. 밭에 두고 왔어요.’ 화가 난 아내는 그의 팔을 당기며 말했습니다. ‘좀 작은 소리로 말해요. 누가 듣고 호미를 가져가 버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러고는 어서 밭으로 가 호미를 가져오라고 재촉했습니다. 농부가 밭으로 가보니 호미는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온 그는 아내에게 바짝 다가가 아내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없어졌어요.’ 예전에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사오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깜빡깜빡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브루클린에서 플러싱으로 오려면 동쪽으로 가야 하는데 서쪽으로 가는 바람에 한참을 돌아왔습니다. 묵주반지를 브루클린 사제관에 놓고 왔는데 플러싱의 신문사에서 찾느라고 진땀을 흘렸습니다.

 

어릴 때의 기억입니다. 추석전날이면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외할머니 댁, 고모님 댁으로 신문지에 싼 고기를 갔다 드렸습니다. 그러면 외숙모와 고모도 제게 추석에 쓸 전과 음식을 주셨습니다. 비록 모두가 어려웠지만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것이 추석의 인심이었습니다. 동네에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놀이를 저녁 먹을 시간까지 하였습니다. ‘술래잡기, 망까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자치기, 이름의 유래는 잘 모르지만 오징어가이상, 말뚝박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그때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존경이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모두가 운동장에 나와서 뛰어 놀았습니다. 형편에 따라서 공고도 가고, 상고도 갔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풍족하고, 모든 것이 빠르게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삶에 여유가 있었고, 친구들은 우정이 있었습니다. 성당 친구들과 성탄 때면 연극도 하고, 예술제도 하였습니다. 공부 잘 하는 것이 벼슬도 아니었고, 공부 못하는 것이 그리 창피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잘살면 잘사는 대로, 못살면 못사는 대로 그렇게 서로 어울리면서 지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산으로, 들로 놀러 다녔습니다. ‘낭만, 여유, 우정, 나눔, 만족이라는 호미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2023년 추석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집에는 자동차가 있고, 손에는 스마트 폰이 있습니다. 마트에는 먹을 것이 넘쳐납니다. ‘한류는 바람을 타고 움직입니다. 한국의 제품들이 당당하게 세계의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당당합니다. 외국 사람들도 한국의 위상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풍요속의 빈곤이라고 우리가 잃어버린 호미들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희망도 잃어버렸습니다. 일어날 힘도 잃어버렸습니다.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자살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가 등장했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 직장, 집을 포기하는 오포세대도 등장했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 직장, , 대인관계, 희망을 포기하는 7포 세대도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호미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호미를 찾자고 큰 소리로 외치면 좋겠습니다.

 

추석 둥근 달에 우리가 찾아서 채워야 할 호미는 무엇일까요? 끝까지 변함없는 믿음의 호미입니다. 절망 중에서도 놓지 않는 희망의 호미입니다. 아무런 조건이 없는 사랑의 호미입니다. 추석 둥근달에 우리가 찾아서 채워야 할 호미는 무엇일까요? 궁핍한 속에서도 잃지 않는 낭만과 여유의 호미입니다. 가난함 속에서도 버리지 않는 나눔과 헌신의 호미입니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놓지 않는 친교와 우정입니다. 우리가 믿음, 희망, 사랑의 호미를 간직한다면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낭만과 여유, 나눔과 헌신, 친교와 우정의 호미를 간직한다면 이 땅에서 이미 하느님 나라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석을 맞이하면서 무엇보다도 조상과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풍요와 여유로움의 이면에는 땀 흘리는 노력과 수고가 있었음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겠습니다. 아울러 말뿐인 사랑보다는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추석이 감사와 고마움의 축제가 되고, 풍요와 기쁨의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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