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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0-03 조회수267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루카 9,51-56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오늘 복음의 도입부에서는 십자가의 길을 앞두신 예수님의 비장한 각오가 묻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그 이름이 무색하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평화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습니다. 외부에서는 로마라는 강대국이, 내부에서는 권력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억압하여 고통과 비탄에 젖은 신음이 끊이질 않았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적대자들의 핍박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신 것은 그런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의 권력자들처럼 강력한 무력을 앞세워 평화를 이루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이 그러듯이 엄격한 규율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압하여 평화를 이루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런건 폭력의 또다른 이름일 뿐 참된 평화라고 볼 수도 없지요.

 

예수님께서는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하시는 아버지의 뜻과 섭리에 순명하여, 사람들이 외면하는 십자가와 희생으로, 사람들이 거부하는 용서와 자비로, 사람들이 망설이고 미루는 사랑과 나눔으로 평화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그러기위해 제자들의 배신, 권력자들의 억압과 모함, 군중들의 야유와 비난까지 기꺼이 감당코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당신의 뜻과 사명을 이어받아 자신을 낮추는 겸손으로, 자기를 내려놓는 순명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으로 참된 평화의 나라를 세우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러웠습니다. 스승님이 당신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는 비장한 자리에서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지의 문제로 싸우질않나, 자기들을 무시하고 배척한 이들을 불로 심판해야 한다며 씩씩대질않나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자신들의 분노가 예수님 때문이라고, 예수님을 위해서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하려 들었지요.

 

그들도,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를 대할 때 그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려 하기보다는, 내 뜻과 입장을 일방적으로 내세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상대방을 비난하며 때로 거친 언사나 폭력을 사용하기까지 하지요. 그렇게해서라도 상대방에게 자기 뜻을 관철시켜 이견이나 논란 없이 조용한 상태를 만들려고 드는 겁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건 그런 식으로 억지로 하나로 모을 수 있는게 아니지요. 그럴수록 우리의 관계는 가뭄에 땅이 갈라지듯 메마르고 갈라져 갈등과 다툼이 더 심해질 뿐입니다. 그렇게 참된 평화는 점점 더 요원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수님께서 그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오해와 갈등으로 갈라진 마음의 땅에 이해와 용서의 비를 뿌리고 자비와 관용이라는 거름을 주는 겁니다. 그래서 당신을 배척하는 사마리아인들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그럴수 밖에 없었던 입장과 상황을 충분히 헤아려주시고, 당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부족하고 약한 마음을 이해해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예루살렘까지 먼 길을 돌아가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십니다. 우리도 그런 예수님을 닮아야겠습니다. 나와 다름을 틀림이라 비난하고 밀어내는 옹졸함에서 벗어나, 서로의 다름으로 상대방의 부족함을 채워 함께 충만한 완성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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