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10-03 조회수919 추천수10 반대(0)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상상력 사전에서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람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시각적인 언어를 표현의 준거로 삼아 말하는 사람이고, 둘째는 주로 청각적인 언어를 빌려서 말하는 사람이며, 셋째는 감각적인 언어를 많이 구사하는 사람이다. 시각파들은 이것 봐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이미지를 빌려서 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여 주고 관찰하며 색깔을 통해 묘사한다. , 설명을 할 때는 명백하다. 불분명하다. 투명하다.’라는 식으로 말하고 장밋빛 인생이이라든가 불을 보듯 뻔하다. 새파랗게 질리다.’와 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청각파들은 들어봐요라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 그들은 쇠귀에 경 읽기, 경종을 울리다. 나발 불다처럼 어떤 소리를 상기시키는 표현을 사용해서 말하고, ‘가락이 맞는다.’라든가 불협화음, 귀가 솔깃하다. 세상이 떠들썩하다.’같은 말들을 자주 쓴다. 감각파들은 나는 그렇게 느껴, 너도 그렇게 느끼니?’하는 식의 말을 아주 쉽게 한다. 그들은 느낌으로 말한다. ‘지긋지긋해, 너무 예뻐서 깨물어 주고 싶어, 썰렁하다, 화끈하다. 열에 받치다. 열이 식다.’갈은 것이 그들이 애용하는 말들이다. 자기와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그 사람이 눈을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일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보라고 요구했을 때 눈을 들어 위쪽을 보는 사람은 시각파이고, 눈길을 옆으로 돌리는 사람은 청각파이며, 자기 내부의 느낌에 호소하려는 듯 고개를 숙여 시선을 낮추는 사람은 감각파다.”

 

무엇이 옳고 그른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기질을 타고 나는데 다른 것들을 포용하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관계를 맺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토마 사도는 시각파인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던 토마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예수님께서는 그런 토마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되다.” 그런가 하면 바오로 사도는 청각파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보아라.” 이방인인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를 비유로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힘든 자들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다.”

 

오늘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축일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향인 아시시에 가면 성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성인은 감각적인 언어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은 새와도 대화 할 수 있었고, 장미와도 대화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기도하던 성당에는 비둘기 한 쌍이 있습니다. 이 비둘기는 몇 백 년을 이어가며 성인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인이 유혹을 견디기 위해서 장미 밭에서 굴렀을 때, 장미는 가시를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성인이 기도하던 곳에는 가시가 없는 장미가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들 또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하면 좋겠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의 다짐을 모아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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