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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6주간 수요일](사제 정진만 안젤로)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10-04 조회수202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라나서려던 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들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마다(루카 9,57.59.61 참조)

‘주님을 추종하여 따름’을 표현하는 특별한 그리스어 동사 ‘아콜루테오’(따르다)가 사용되는데,

이 단어는 앞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마태오가 그분을 따라나선 대목에서도 사용됩니다(루카 5,11.27.28 참조).

이를 통하여 루카 복음사가는,

이 세 사람의 어정쩡한 태도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제자들의 모습과 병행시켜 대조적으로 드러냅니다.

첫 번째 사람은 “어디로 가시든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장담하지만,

이는 마땅한 거처도 없이

공생활 내내 떠돌아다니시던 예수님과 일행의 삶을 알지 못한 채 드린 공허한 다짐일 뿐입니다.

또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람은 각각 아버지의 장례와 가족들과의 작별 인사를 더 우선시합니다.

물론 유다인들에게 장례는 자식의 마땅한 도리고(토빗 4,3-4; 14,11-13 참조) 가족들과의 작별 인사 또한 인지상정이지만,

그 어떤 관행이나 기본적인 도리도 결코 주님을 따르는 일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제1독서에서 욥은 “그분께서 잡아채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누가 그분께 ‘왜 그러십니까?’ 할 수 있겠나?”라며,

하느님께 순명하는 데는 그 어떤 조건이나 타협도 있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차마 세상의 방식대로 할 수 없어 무엇인가를 포기해야만 하고 신앙 때문에 불편을 겪을 때마다,

‘그래, 내가 지금 주님을 올바로 따르고 있구나!’라고 확신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사람의 일이 결코 하느님의 일보다 먼저일 수 없다는 소신을 품고서,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지 말고 단호히 구원 여정을 이어 갑시다.

 

(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루카9,57-62)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실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다. 곧 죄인들의 죗값으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확실한 진리의 길이다,

그러나 오를 이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길을 모르고 따르겠단다. 그저 기적과 능력의 예수님을 따르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라 생각한 것이다. 신앙의 목적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구원의 진리임을 모르는 신앙생활을 한다.

 

(1베드1,9)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대속하신 내 십자가임을 모르면서 성당에 다닌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받는 용서를 모르고 그 십자가의 의로움으로 구원, 하늘의 생명을 받는 것을 모르고, 그러니 자기 열심, 자기 의로움으로 복을 얻기 위해 열심을 부린다.

 

58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 가난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 그 예수님을 우리의 머리로 구원의 진리로 믿는이가 없다는 것이다.

 

(콜로1,18)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코린6,15) 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탕녀의 지체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신앙의 올바른 목적지부터 ‘찾으라’ 하신다. 헛된 신앙생활를 ‘버리라’ 하시는 것이다.

과녁을 벗어나다- 하마트리아-죄(罪)

 

59ㄱ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 앞절, 그 신앙의 목적지, 과녁을 벗어난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이다.

 

59ㄴ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 아버지의 장사(葬事)를 외면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죽은 이를 위한 신앙생활이 아닌 그 죽은 이, 곧 죄인을 살리는 하느님나라를 선포하는 신앙을 살라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의 생명(진리)을 갖지 못한 사람을 어둠(죄)으로 죽었다고 한다.(갈라3,22참조) 그 죽은 이를 살리는 것이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 복음이다.

 

(마태4,23)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모두 용서로 살려 주셨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복음,

(이사53,4-5) 4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루가4,18-19.21)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61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 쟁기에 손을 댄 사람~

 

(집회38,25) 25 쟁기를 다루면서 막대기 휘두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황소를 몰면서 *자기 일에 몰두하며 송아지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지혜로워질 수 있겠느냐?

= 자기일, 자기 의로움을 자랑하는 사람, 곧 제사밖에 할 줄 모르는 자가(황소, 송아지는 제물) 하늘의 구원의 지혜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제사는 십자가에서 단 한번으로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돌아보는 자,

(창세19,17.26) 17 그들(천사)은 (화려한 삶의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의 가족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달아나 목숨을 구하시오.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되오. 이 들판 어디에서도 멈추어 서지 마시오. 휩쓸려 가지 않으려거든 산으로 달아나시오.” 26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보다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 하느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자기의 뜻을 이루려는 신앙을~ *그 헛된 죽음의 신앙을~ 그리고 *세상이 주는 편안의 삶을 돌아보면 재앙이다. 곧 하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길, 그 생명의 말씀(물) 신앙에서, 제사 그 피의 신앙으로 돌아가면 재앙이다. 그것이 물이 피로 변한 곧, 생명이 죽음이 된 이집트의 첫째 재앙이다.(탈출7,14~)

 

(갈라3,3)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생명)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죽음)으로 마칠 셈입니까?

= 그 죽음의 문화, 죽음의 신앙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돌아보면 인된다.

 

(갈라5,1)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죽으셨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아멘.!!!

 


 


 

 

2023년 10월 04일 수요일

[연중 제26주간 수요일](사제 정진만 안젤로)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의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9장 57절의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는데라는 표현은,

오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일어난 사건으로서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사건임을 확인하여 줍니다.

오늘 복음에 담긴 세 이야기의 주제는 따름입니다.

따르다로 옮길 수 있는 그리스 말 동사 아콜뤼테오가 이야기마다 쓰여(9,57.59.61 참조하나의 공통된 주제로 다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을 시작하시면서 길 위에서 만난 이들에게 제자가 되기 위한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자신에게 주어진 안녕과 평안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편히 쉬실 곳조차 없는 방랑자의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둘째일상적 관습에서(1열왕 19,19-21 참조벗어나 하느님 나라를 위한 선택과 헌신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를 뛰어넘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행위에 중심을 두고 살아가는(루카 8,19-21 참조관계의 변화,

곧 새로운 가족 관계의 설정을 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발견되는 특이점은 제자가 되고 싶은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하였는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복음 속 이야기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는 그분께서 걸어가신 길을 함께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나요?

오늘 교회가 경축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은 초대에 응답한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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