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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8. 우리는 누구의 이웃이어야[4/4] / 상경기[3] / 공관복음[83]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0-06 조회수237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8. 우리는 누구의 이웃이어야[4/4](루카 10,29-37) / 부스러기 복음[83]

 

여기서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인과의 관계를 한번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두 민족 간에는 큰 앙금이 있다. 유대인에게는 사마리아 사람은 변방 민족으로 항상 멸시하여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렇지만 유대인에게 항시 괄시만 받고 살아오는 사마리아 사람 처지에서 보면, 유대인이라고 하면 다소간 몸서리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나쁜 사이였다. 그런 유대인이 길거리에 초주검 상태에서 쓰러져 있는 상태일진데, 보통의 사마리아 사람이라면, ‘그래, 그 꼬락서니 좋다.’ 하고는 한두 번 발길질하고는 달아날 수도 있는 처지일 수도 있었다. 그러한 관계에서 사마리아 사람이 초주검 상태의 유대인을 보자마자, 단번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는 그 자체가, 그는 정말 착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성경도 이 이야기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라고 적고 있다.

 

그는 그 유대인을 치료하는 데 모든 배려를 다했다. 그 행인의 어려운 처지를 가장 현실적으로 도와준 사람이었다. 즉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진정으로 모든 것을 다하여 초주검이 된 행인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도도하게 따지는 율법 학자에게 되물었다. “그래, 이 행인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냐?” 율법 학자는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라며 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세 사람의 예를 드시고는, ‘이 행인의 이웃이 되어 준 이는 과연 누구냐?’ 하고 되물어보셨다. 그렇다. 우리는 흔히 누가 나의 이웃이냐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누가 나의 이웃인가?’ 하고 생각하기보다는,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하느냐?’ 라며 늘 자문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에게 분명히 물으셨다. ‘이 행인의 이웃이 되어준 이가 누구였느냐?’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우리마저, 이웃 사랑에 대해서는 언제나 나를 먼저 생각하고, 이웃을 차선으로 생각하기가 십상이다. 사랑은 아낌없이 행할 때만 값진 것이 된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여유 있을 때 행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 담박한 질문에 율법 학자는 그 행인에게 사랑을 준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래, 맞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예수님과 율법 학자와의 논쟁은 이렇게 끝이 났다. 누가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다. 논쟁 그 자체에 대해 논쟁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진정한 이웃 사랑의 그 이웃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하는 그 사랑에서, 우리는 진정 나를 필요로 하는 그 이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하고 생각하기보다,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주어야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예수님의 질문과 같이,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자. 그리하여 나의 도움을 필요로 느끼는 사람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자. 사랑은 받을 것을 기대하고 주어서는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나한테는 불이익이 될지언정 조건 없이 주어야 한다. 거저 주었을 때의 그 보람은 언제나 값진 것이 된다. 준 것에 대한 혜택도 그렇다. 그것의 보상으로 수반되는 혜택이라면, 지금이 아니라도 좋다. 후세의 누군가가 받을 게다. 주위에 불쌍한 처지에 계신 분이 있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다가가 사랑하자. 우리는 모두 나를 필요로 하는 그 사람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야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이신 하느님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또 모든 것을 다하여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영생을 누리는 최대의 첩경이다. 이처럼 하느님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하느님이 사랑하는 이인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히 영생을 누릴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가가 사랑을 베풀 이 이웃을, 나의 기준보다는 이웃의 그 기준에서 정해야만 한다. 그러기에 하느님이 사랑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자, ‘우리는 지금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가?’ 라며 자문하는 믿음의 삶을 살자. ‘나는 지금 진정 누구의 따뜻한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하느냐?’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계속]

 

[참조] : 이어서 ‘9. 마르타와 마리아(루카 10,38-42)’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언니 마르타와 그녀의 동생 마리아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이웃,사마리아,율법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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