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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해야 한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0-29 조회수206 추천수2 반대(0) 신고

제가 시간이 날때면 주로 보는 것이 있습니다. 야구를 예전에는 빠지지 않고 꼬박 꼬박 보았습니다. 야구는 한번 보면 3시간은 내리 비우고 보아야 하기에 참 많은 시간을 할애를 해야합니다. 또 하나 보는 것이 있다면 개그를 자주 봅니다. 특히 일요일 저녁 9시에 주로 하던 것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그 프로그램은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주로 보는 것이 있다면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 부르는 것을 봅니다. 상기 3가지는 마음에 부담을 가지지 않고 보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구는 좀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이고 지면 기분도 않좋아 지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그런 느낌도 들고 가성비 차원에서 높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상기 저의 취미 혹은 자주 보는 것에 주인공들을 보면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학벌과는 거리가 있는 업종입니다. 그래도 그들을 보면 마음이 행복했습니다. 개그도 보면 그리 학벌이 좋지는 않습니다. 서울의 특정 대학교 출신들이 주로 그쪽에서는 서울 대학교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머리가 아주 좋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수입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사람만 그런것은 아닙니다 그분야에서 아주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은 다들 잘 살고 있습니다. 획일화된 사고로 인해서 학벌이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앞에서 열거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분들의 삶을 보면서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분야나 살기 나름입니다. 그리고 그 분야에 있는 사람이건 공부를 잘해서 의사가 되었거나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거나 혹은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었거나 할 것 없이 모든 분야는 공존합니다. 우열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부족한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살고 서로 좋은 기운을 같이 공유한다면 그것으로 세상은 좋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 자주 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평화 방송의 프로그램입니다. 평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교수 신부님들이 나오셔서 혹은 신부님들이 나오셔서 강론을 하십니다.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합니다. 성당에서 신부님들의 강론 시간이 저에게는 매우 행복한 시간입니다. 어제는 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부님이 나오셔서 강론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중간에 들어서 전체적인 맥락은 모르겠으나 중간에 들어도 아주 좋았습니다. 내용은 이것입니다. 성령과 율법주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하면 사람들이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성령 쇄신과 같은 곳에 가야지 만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데 성령이라고 하면 어떤 특별한 것으로 생각을 정해져 있으면 않된다고 말씀주셨습니다. 그 예로 신부님이 강론을 하러 일반 성당에 가면 사람들이 신부님은 똑똑하기만 하지 성령을 받으라고 하면서 아직 성령을 모르는 것 ?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하신 말씀은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것으로 특정 지우려는 것이 진정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여러 분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활동력이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활동력이 많고 기도 보다는 활동에 집중하다가 주변에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과 트러불이 생기면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활동이 강한 사람들을 판단하고 다시는 그런 사람들과 같이 않어울리겠다는 그런 말을 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양성이 공존하고 각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하여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이것이 성령이 작용하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영과 육이 있는데 영과 육은 서로 분리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만으로 인간은 존재 할 수 없고 육만으로 존재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영이 기도하는 것이라면 육은 활동도 하고 활발히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려면 두가지 영역이 상호 균형적으로 이루어 갈 때 이때 인간은 완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과 육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힘이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다양성 안에서 주님의 영이 작용하시어서 주님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이 성령이 작용하신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영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리사이와 같은 사람들, 혹은 어려서 부모님의 교육을 엄격히 받은 사람들, 흔히 말해서 바른 생활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볼 때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이 너무 번잡하고 무엇인가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생각하고 그곳에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행위들이 우리가 복음에서 말하는 율법학자들과 같이 율법에 모든 것을 국한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작용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모독하는 행위가 방언을 하는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것으로만 단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 혹은 조용히 금육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서로 섞일것 같지 않은데 유기적으로 작용하여서 서로 공존하는 것이 성령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 유기적인 관계를 자신의 가치를 우선하여서 관계를 단절한다면 그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복음에서도 주님을 시험하기 위하여서 바리사이가 주님에게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주님이 말씀하시길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으로 주님을 한정하려는 바리사이와 달리 경계를 넘어 서로 받아들이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구원으로 넘어가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구원으로 넘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사랑은 어찌 해야하나? 자기 자신 안에서 갇혀서 바라본다면 아까 말씀 드린 영과 육을 분리해서 판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안의 성에서 나와서 개방적으로 나의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내 안에 없는 것을 형제 자매의 것을 포용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봅니다. 사랑 안에서 참 자아를 발견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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