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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의 날]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1-02 조회수237 추천수4 반대(0) 신고

[위령의 날] 마태 5,1-12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오늘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로 죽은 모든 이의 영혼이,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나신 분들을 기억하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가능하다면 첨단 과학과 의학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 옛날 진시황이 그렇게 기를 쓰고 ‘불로초’를 찾아다닌 것도 그래서겠지요. 하지만 우리 삶은 언젠가 죽기에,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더 소중합니다. 죽음이 없다면 죄와 악습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병고와 고통, 슬픔과 고독이 끝도 없이 계속될텐데 그걸 생각하면 죽음이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우리 삶이 죽음으로 정리되고 완성되니 죽음도 삶도 소중해지는 겁니다. 그렇기에 죽음 안에 삶이 있고 삶 안에 죽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가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들 각자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절대 살아온 시간의 양으로 평가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삶의 영역에서 그토록 집착하는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지요. 그보다는 하루 하루를 얼마나 의미있고 보람있게 살았는가가 중요할 것입니다. 이때 삶의 의미와 보람을 재는 척도는 ‘내가 얼마나 만족했는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얼마나 만족하시고 기뻐하셨는가’가 되겠지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주님 뜻에 맞게 성실히 잘 엮어갔다면 하느님께서 그런 나를 보시고 기뻐하실 겁니다. 그리고 나 역시 하느님과 그 기쁨을 함께 누리며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걸 깨닫게 될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어제와 같이 마태오 복음 5장의 ‘행복선언’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해봐도 대체 이 각박하고 험한 세상살이 중 어느 부분을 보고 ‘행복하라’고 하시는건지 그 명령의 근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 근거를 찾아보고자 오늘은 여덟 가지 행복선언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말씀에 머물러 봅니다. 앞의 여덟 가지 행복선언에서는 “행복하여라... ~할 것이다.”라는 미래형 문장형식이 반복되다가 마지막 말씀은 현재형 문장으로 마무리 됩니다. ‘행복해지도록 노력해봐라’도 아니고, ‘행복해질 수도 있다’도 아니고, “너희는 행복하다”라고 단정지어 말씀하시지요. 삶이 힘들고 지쳐 주님을 따라나선 군중들에게는 행복이라는게 자기와는 먼 일처럼 여겨져, ‘너희는 행복하다’는 말씀부터가 실감이 안나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라고까지 하시니 군중들 입장에선 어안이 벙벙할 겁니다. 대체 무슨 근거로,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납득이 가지도 않을 테지요.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와 자신감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뜻하신 바대로 이루시는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이신 분께서 우리에게 ‘행복하여라’라고 선포하셨다면, 그 말씀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테니까요. 주님의 입에서 선포된 말씀은 군중들 사이에서 소리로 흩어지지 않고, 군중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파고들어 그 존재 깊숙이 심겨질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말씀을 열심히 잘 가꾼다면 그 말씀에 담긴 하느님 뜻이 ‘현실’로 바뀌겠지요. 그분이 바라시는 뜻이 바로 우리의 구원과 행복이니, 결국 우리는 반드시 행복해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이제 이 말씀은 우리에게 먼 미래에나, 이루어질지 말지조차 불확실한 “if 가정문”이 아니라 현재형 단정문입니다. 현실이라는 벽이 만만치 않고 삶의 문제들이 온통 뒤엉켜버린 채로 저 밑바닥 끝까지 내팽개쳐져도, 하느님을 기어이 뵙겠다는 의지와 열망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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