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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1-02 조회수289 추천수4 반대(0) 신고

231102.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11월은 정녕 신비의 달입니다. 절로 죽음과 비움의 신비를 묵상하게 합니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우리를 존재의 심연으로 이끌고 갑니다. 마른 풀 한 줄기를 침대로 삼아 내려앉은 서리에서도, 뒹구는 낙엽을 깨우며 소스라치게 부는 바람에서도, 우리는 그 만남과 죽음의 신비를 봅니다.
 
사실, 우리는 두 개의 탄생과 두 개의 죽음의 문을 통해 이 변화의 길을 갑니다. 곧 첫 번째 죽음과 탄생의 문은 어머니의 탯줄을 끊는 죽음과 동시에 태어나는 이 세상에서의 지상탄생이며, 두 번째 죽음과 탄생의 문은 이 세상에서의 죽음과 동시에 태어나는 하늘나라에서의 천상탄생입니다. 두 개의 문을 통과할 때마다 눈을 감고 낯선 곳으로 오고 낯선 곳으로 가기에 두려움에 떱니다. 그러나 첫 번째 문을 통과할 때 세상의 부모들이 기다리며 기뻐하였듯이, 두 번째 문을 통과하면 기다리며 기뻐하는 천상형제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하나의 통로요, 만남입니다. 이 세상으로 오는 통로요 이 세상과의 만남이며, 하늘나라로 가는 통로요 하늘나라와의 만남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도 먼저 간 이들의 죽음을 통해, 이 자리에 와서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곧 그들의 죽음이 오늘 우리 만남의 통로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죽음에 대해 묵상하는 것은 죽은 다음에 오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생사가 갈라질 수 없게 펼쳐져 있는 삶의 세계를 성찰하기 위해서입니다. 곧 현재를 충실히 죽고, 현재를 충실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완성을 향한 삶이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에티우스는 말합니다.
 
“흘러가버리는 지금이 시간을 만들고, 머물러 있는 지금이 영원을 만든다.”
 
이처럼, 죽음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짓고, 삶의 질이 죽음의 질을 결정짓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중요함을 파우스티나 성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첫 순간이고 마지막 순간이며 유일한 순간이다”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죽음이 신비한 것은 죽음이 한 생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생명의 신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 심오한 진리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자 내가 여러분에게 신비 하나를 말해주겠습니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습니다.”(1코린 15,51-56)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워라.”(마태 11,29)

주님!
당신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위에 있지만 짓누르지 않는, 묶지만 옭아 메지 않는,
오히려 편하게 하는 사랑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함께 지며 나누는, 함께 가며 끌어주는 그 손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동행해 주고 길이 되어 주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 마음을 따라 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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