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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1-04 조회수162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 루카 14,1.7-11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식탁 예절이 아주 엄격했습니다. 지켜야 할 규칙도, 따져봐야 할 순서도 복잡했지요. 특히 식탁에 앉는 순서가 중요했는데, 대체로 식사에 참여하는 손님들의 지위나 신분에 따라 어느 자리에 앉느냐가 결정되었습니다. 출입구와 거리가 먼 안쪽 높은 자리는 보통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주어졌는데, 문제는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식사 자리에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도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주인공은 늦게 나온다’는 심리가 그 때도 있었나봅니다. 아무튼 자기 지위가 높다고 생각하여 안쪽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으면, 나중에 자기보다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 왔을 때 그에게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는데, 예수님은 바로 그런 모습을 지적하시며 그러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들을 바리사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신실하고 바른 사람인지를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윗자리’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잘 보이는데에 앉아있어야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와서 인사를 할 것이고 그러면 그만큼 자기가 더 돋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수만 있다면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이에게 굽신거리며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생겨도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하는게 당연하다고 여겼을 법도 합니다. 권력이라는 세상의 법칙에 기대어 자기 이익을 취하는데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이니, 자기들도 권력이라는 법칙을, 상하관계라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인지 신앙의 영역, 구원의 문제에까지 그 규칙을 적용하려고 들었습니다. 자기들은 세상에서 전통을 가르치고 율법을 적용하는 중요한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니, 당연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고, 심지어 그 나라에서도 높은 자리,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여겼던 겁니다.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과 교만으로 가득 차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헛다리’를 짚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하느님 나라’에서 내가 지낼 자리는 내 능력과 조건을 이용해서 내 마음대로 차지할 수 있는게 아니라, 나를 그곳에 초대해주신 하느님께서 정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제멋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가는 애써 차지한 그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들 눈치를 보며 자기를 드러내고 높이려는 교만한 사람보다, 당신을 경외하며 겸손한 모습으로 솔선수범하여 당신 뜻을 따르는 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시어 당신과 가까운 더 좋은 자리에 앉혀주시는 것이지요.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겸손해지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분께서 스스로를 낮추시어 종이 되시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족하고 약한 우리 인간이 뭐라고 감히 하느님 앞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서서 잘난 척, 선한 척, 의로운 척을 할까요? 하찮은 피조물 주제에 어딜 감히 창조주 앞에서 제 뜻을 고집하고 억지로라도 관철시키겠다고 되지도 않는 고집을 부릴까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리사이의 기도가 아니라 세리의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비추어 자기 잘못을 성찰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며 당신께 의탁하는 이들을 하느님은 당신 나라에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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