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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1-20 조회수279 추천수4 반대(0) 신고

231120.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 

오늘 <복음>은 예리고의 눈먼 거지(바르티메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른 이들의 꾸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악을 쓰듯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8,39)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에게서 나온다는 <이사야>(11,1) 예언서의 말씀을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가까이 오자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
 
예수님께서는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으시고, 그의 믿음을 유도하고 고백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물으십니다. 곧 당신께 대한 믿음을 묻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청원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곧 첫째는 믿음으로 청하는 일이요, 둘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청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진정 청해야 할 것, 주님 뜻에 합당한 것을 청하는 일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는지 빤히 아시지만, ‘우리가 원해야 진정 원해야 할 것’과 ‘믿음’을 깨우쳐주십니다.
 
그러자, 거지 장님은 신뢰와 의탁으로 청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 18,41)

그런데 대체 무엇을 보아야, ‘다시 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보다’(anablefo)라는 단어는 ‘위를 쳐다보다’, ‘새로운 것을 보다’, ‘시력을 회복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인이 눈을 뜨기 위해서는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그분의 사랑을 보게 될 때, 비로소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분의 ‘사랑을 보는 눈’이 새로운 것을 보는 눈이요 믿음으로 새로 보는 영적인 눈인 것입니다. 그것은 육신의 눈을 치유 받는 것을 넘어서, 영혼의 눈을 뜨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다시 보게 하고 구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8,42)
 
이제는 우리가 보려고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물질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이제는 ‘믿음’을 통해서 영적인 세계, 곧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떠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는 일이요, 지금 우리의 길을 사랑으로 동행하고 계시는 그분을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길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동행하시는 주님을 “따라” 따라나서는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
 
주님!
제가 보지 못함은 태양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눈을 감고 있는 까닭입니다. 마음이 완고한 까닭입니다.
성전 휘장을 찢듯, 제 눈의 가림 막을 걷어 내소서!
완고함의 겉옷을 벗어던지고, 깊이 새겨진 당신의 영혼을 보게 하소서!
제 안에 선사된 당신 사랑을 보게 하소서.
제 안에 벌어진 당신 구원을 보게 하소서.
제가 바라고 싶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해주고 싶은 것을 바라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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