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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2-28 조회수77 추천수5 반대(0) 신고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마태 2,13-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오늘은 권력에 대한 헤로데의 욕심과 집착 때문에 소중한 생명을 잃은 수많은 아기들의 영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미래에 ‘정적’이 될 지 모를 이를 제거하기 위해,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수많은 아기들의 목숨을 빼앗아가면서까지 헤로데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70세, 의학 수준이 발달하지 않았던 상황을 생각하면 이미 ‘천수’를 누린 뒤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후대 역사에 길이 남을 그 만행을 저지르고 난 뒤 얼마 못 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수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 헛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 사악한 이로 기억되고 있지요. 그가 욕심을 부리기 전에 먼저 그 오랜 날들동안 영화를 누리며 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면 그런 만행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아기들을 자기 궁궐로 초대하여 축하와 환영의 잔치를 베풀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세례자 요한만큼은 아니더라도, 주님의 탄생을 늦게나마 알아보고 준비한 지혜로운 왕으로 기억되었겠지요. 생각할 수록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물론 이런 슬픈 일이 벌어진 것은 하느님 탓이 아닙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께서 그런 일을 하실 리가 없지요. 그러나 헤로데가 벌인 악행에 대해 기술한 뒤에 마태오 복음사가가 덧붙인 설명이 오늘따라 참 듣기 거북하고 마음에 거슬립니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게 맞는 겁니까?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 실현되기 위해 죄 없는 아기들이 꼭 죽어야만 했던 겁니까? 그런 슬프고 괴로운 예언은 성취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나은거 아닙니까? 전 하느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단지 당신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슬픔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지는 않으실 거라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더 나아가 하느님의 예언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그런 예언을 ‘왜’ 하셨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런 슬프고 괴로운 일을 겪기를 원하셔서, ‘니들 어디 한 번 고생좀 해봐라’하는 심보로 그런 예언을 하시는게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우리에 대해 잘 아시기에, 철저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마주하게 될 슬픈 결말에 대해 미리 경고하시려는 겁니다. 잘못된 길을 걷는 자녀에게 ‘너 계속 그러다가 정말 큰일 난다?’라고 말하는게, 자녀가 잘못되기를 바래서 그러는게 아닌 것처럼, 그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지금에라도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올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경고해주기 위해 하는 말인 것처럼,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앞으로 닥쳐올 슬프고 괴로운 일들을 미리 알려주시는 것은 우리가 더 늦기 전에 회개하여 당신 뜻에 맞는 올바른 선택을 함으로써 그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시는 것이지요.

 

물론 굽은 자로도 직선을 그으시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잘못으로 희생된 불쌍한 영혼들을 당신 가슴에 품으시어 위로하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전능하심에 모든 걸 떠넘기려 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직접 개입하시어 미리 막아주지 않으시고 그런 슬픈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소를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외양간 고칠 생각을 하는 우리의 나태함 때문입니다. 실패와 절망으로 한 번 크게 데여봐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고 바로잡으려 애쓰는 우리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무고한 생명이 헛되이 희생되지 않도록 미리 살펴보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 불의 앞에 침묵하지 않는 것, 하느님 뜻에 따라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용기를 지니는 것, 손해를 보고 희생하더라도 주님을 따라 참된 진리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 그것이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의 희생을 기념하는 우리가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들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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