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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1.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1-03 조회수338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4년 1월 3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수요일

30대 초반부터 강의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저였지만

많은 곳에서 저를 초대해 주셨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제 강의를 들으신 분은 “목소리가 좋다.”

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십니다.

또 3시간 넘게 강의하는 동안 물 한 잔

마시지 않고 강의하는 것을 보고서는

강철 성대를 타고났다는 말씀도 해주십니다.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40대에 교수법 수업을 들으면서

말하는 것은 계속 연습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성대도 근육이라서 늙는다는 것입니다.

운동하지 않으면 몸의 근육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성대도 사용하지

않으면 성대 근육이 빠져서 강의하는 것이

힘들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워낙 발음이 안 좋아서

입에 나무젓가락을 물고서 매일 연습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연습이 모여

튼튼한 성대 근육을 만든 것인데,

타고난 것처럼 착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타고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타고난 것도

사라집니다. 운동하지 않으면

근육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주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서 머무는 것도

계속해서 주님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은 또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주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자주 만나야 이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주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저절로 주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예수님 위에 성령이 내려오셔서 머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증언하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요?

그냥 우연히 보게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맞게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가죽 띠를 두른 채

생활했으며, 메뚜기와 들 꿀만을 먹으면서

하느님을 향했기에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진리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절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셨을까요?

아닙니다.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인

인간들보다도 더 열심히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도 이렇게 노력하는데,

우리의 노력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오늘의 명언

인생의 고통은 지나가 버리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는다.

(르누아르)

사진 설명: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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