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해 주님 공현 대축일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이 가진 것, 황금과 유향과 몰약> 복음: 마태오 2,1-12 LORENZETTI, Pietro 작,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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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특별히 동방의 세 박사가 먼 길을 걸어 태어난 메시아를 만나러 온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그러한 희생과 투자를 했을까요? 그분을 만나기 전에는 다른 일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바이브’는 2020년 개봉한 영화입니다. 외딴 눈 덮인 산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은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자살로 극심한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여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해 남자 동료와 함께 눈 덮인 외딴 산에 좌초된 자신을 발견하면서 극적인 전환을 이룹니다.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여자 주인공에게 힘과 지지의 기둥이 됩니다. 영화의 결정적인 순간은 남자 주인공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궁극적인 희생을 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에 그녀는 자신의 가치와 생명 자체의 가치를 재평가합니다. 여자는 다쳐 더는 걸을 수 없는 남자를 살리기 위해 혼자 산에서 내려옵니다. 남자는 버티지 못하고 죽었지만, 여자는 어린 자신과 화해하고 의욕 있게 살아갑니다. 사람은 나 때문에 죽은 이가 아니라 나를 ‘위해’ 죽은 이가 필요합니다. 그가 나의 메시아, 구원자가 됩니다.
이러한 체험을 위해서는 나를 사랑하는 존재와 머무는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되어있습니다. 성막으로 치자면 지성소와 성소, 그리고 뜰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 세 군데서 참다운 예배가 일어나야 합니다. 영은 ‘원하는 능력’인데, 십계명을 황금 대신 원해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자기 생각과 기억, 의지를 주님께 바치는 향이 바쳐져야 합니다. 뜰에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했던 예수님처럼 자기 육체를 죽이는 몰약이 바쳐져야 합니다. 이 세 예물이 없다면 주님과 머물며 그분이 나의 삶의 의미가 되게 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 성화 작가인 심순화 가타리나 화백은 어느 날 매일 성당에 다녀오고 작업에만 매달리며 은둔자처럼 생활하고 성화 작업만 하는 데 지쳐 폭발하면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고, 다른 사람들이 의미 있게 바라보냐며 그때 비명을 지르자 마음속에서 아주 잔잔하게 “의미가 있지! 너는 나를 그리고 있단다. 내가 가는 길은 끝이 없단다.”라는 조용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침묵의 소리를 듣는 순간 커다란 폭풍이 멈추고 잔잔한 호수가 된 것처럼 평화로워져서 죽을 때까지 성화 작업을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또 한 번은 수원 교구 매주 주보에 실을 그림을 그리는데 1년을 그리고 나서 2년을 더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버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걸려서 그림에 차질이 생기면 안 돼서 사람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꿈에서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절벽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거의 힘이 빠져 혼자 힘으로는 보따리를 들고 오를 수 없어 “도와주세요!”라고 지친 목소리로 말하자 키 큰 아저씨가 위에서 보따리를 들어주었고 두 손이 자유로워진 심 작가는 온 힘을 다해 끝까지 올라가 바닥에 쓰러지자 키다리 아저씨는 절벽을 끝까지 올라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예수님이었습니다. 이것이 너무도 생생하여 바로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이렇게 더 살아야 할 이유, 포기하지 않을 힘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분과의 만남은 그러나 내가 육체와 생각과 마음이 전부 주님을 만나고 싶은 것 하나로 모일 때 가능합니다. 그분 아니면 죽는 편이 낫다고 여길 때 그분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라고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래서 황금은 십일조로, 유향은 광야에 나와서, 몰약은 육체를 절제하며 오직 그분만을 바래야 합니다. 이때 주님께서 만나주시고 그러면 우리는 자신 있게 “나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빛은 어둠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내가 완전히 봉헌되지 않은 채 그분을 만나면 그분은 우리에게 이용 당하십니다. 그러니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들고 꾸준히 그분께 나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