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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참 어머님이신 우리 성모님 / 연중 제3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1-23 조회수191 추천수2 반대(1)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참 어머님이신 우리 성모님 / 연중 제3주간 화요일(마르 3,31-35)

 

제자들과 복음 선포에 나서신 예수님, 그 아들을 떠나보낸 우리 성모님의 마음을 어찌 그 무엇에 비기랴? 간간히 들리는 아드님 소식은 먹보요 술꾼, 세리와 창녀의 친구라는 마음 아픈 빈정거림이었다. 언제나 곰곰이 새기기만 하신 성모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가히 짐작할 게다. 아마도 세례자 요한에 가한 부정적 면이, 당신 아드님께로 돌려질까 마음도 졸이셨을 게다. 그 아드님이 드디어 고향에 왔단다. 예수님을 목말라하고 그리워하신 성모님은, 단번에 달려간다.

 

그러나 그 마음을 야속한 군중이 가로막는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 누이들이 지금 밖에 계십니다."라는 전갈에 예수님의 따끔한 일침이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예수님 말씀은 인간적으로는 도통 이해가 안 된다. 혈육으로도 더더욱 그렇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다.”라는 그 말씀에는, 아예 유구무언 그 자체다오늘의 근동도 마찬가지지만, 성경에서 형제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기는 물론 가까운 친족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하신다. 제자들의 공동체가 하나의 가정이라는 것이다. 또 하느님 대신에 아버지라고 함으로써 이 가정의 성격이 강조된다. 영적인 누이와 어머니가 언급되는 것은 예수님 둘레에 여제자들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해서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그분께서 성모님께 면박을 주며 깊은 상처를 안겼다나. 그래서 아예 마리아를 공경할 필요가 없단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편견이다. 성모님께서는 영육 간에 그분과 이미 하나가 되신 분이시다. 이렇게 성모님 마음은 예수님과 온전히 일치하셨다. 그러나 성모님을 잘 모르는 이가 그저 아기 예수님의 대리모로 비하할 수도.

 

우리가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는, 그 누구보다도 성모님께서 가장 아름답고 완전하게 예수님 뜻을 실천하셨기 때문일 게다. 사실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은 곧 그리스도인이다. 도대체 누가 하느님 말씀을 잘 이해하면서 따른 이들이겠는가? 천사가 전해준 잉태 소식을 곰곰이 새긴 마리아요, 구유에서 갓난아기의 옹알이를 알아들은 이도 성모님 아니신가! 자녀의 모든 말이 그 어머니에게 기쁨이 되듯, 주님의 이 말씀도 성모님께는 더 없는 기쁨이었을 게다.

 

이처럼 성모님은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그 아드님인 예수님을 영육으로 뵙기를 기다리신 분이시다. 예수님의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라는 이 말씀은 성모님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성모님을 최고의 참 가족인 어머니로 제시하시는 말씀일 게다만에 하나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중단하고 군중을 제치고 밖으로 나와, 성모님을 끌어안고 기쁨의 재회를 가졌다 상상해보자. 그러면 그 예수님은 진정한 하느님으로 우리 뇌리에 남았을까? 또 그 성모님은 우리 뇌리에 기리는 만인의 어머님이 정녕 되셨을까?

 

예수님의 어머님과 형제들, 누이들의 현장 방문으로, 예수님께서는 혈육의 관계를 초월하여 성모님을 신앙적으로도 우리의 참 어머니로 세우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간적인 면을 넘어 성모 신심에 대한 깊은 묵상이 필요하리라. 그분을 신앙의 참 어머니로 공경하여야 할 게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예수님 만나 뵙기를 간절히 기다려야만 한다. 지금도 성모님은 하늘나라 그 어디에선가 아들 예수님과 역시 내 새끼!’라시며,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실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성모님,형제,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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