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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애절한 마음만 가진다면 /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05 조회수158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애절한 마음만 가진다면 / 연중 제5주간 월요일(마르 6,53-56)

 

예수님과 일행은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이곳은 카파르나움 남서쪽에 있는 비옥한 평야지대다. 그들이 내리자 사람들은 곧 알아보고,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마을 곳곳 장터에다가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거기에 손을 댄 이마다,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사람들은 동네방네 소문을 낸다. 어떤 병도 고쳐 주시는 그분께서 오셨단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병든 이를 들것에 눕혀 데려온다. 주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일어나는 일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온 고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렇듯 예수님과의 만남은 치유를 통한 접촉이었다. 기적의 힘은 분명 예수님에게서 나온다. 그분을 뵙고 싶은 그 갈망, 그 모든 것을 맡기려는 단 하나 오직 믿음, 이렇게 함께 하려는 이 믿음이 모두를 구원으로 이끌게다.

 

사실 손뼉도 부딪쳐야 소리가 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지만, 우리 스스로가 간절함과 무덤덤함,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그 열매를 맺을 수도, 아니면 달리 맺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정녕 예수님을 잘 알고 있을까? 예수님께 무엇을 얻고자 여기저기 분주히 나다닐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손을 다정히 잡고서, 그들을 예수님께 정성스레 데려가기나 할까? 아니면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기는 할까? 이런 일 가운데 과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실천하고 있을까?

 

그래도 예수님 시대의 병고에 시달리는 겐네사렛에 사는 사람들은, 자비의 예수님을 애타게 찾아 간청했단다. 그중에는 멀리서 소리치는 이, 몰래 옷자락이라도 만지려는 이, 가까운 이들을 동원해 부탁하는 이, 그 방법은 각자 사뭇 달랐다. 그러기에 그들은 저마다 다 구원받았다. 치유는 자신이 병자임을 아는 게 먼저요, 어떤 방법으로도 예수님을 만나는 게 다음이며, 마지막은 보이고 자비를 청하는 거다. 가끔 우리는 각자가 병든 것조차 모른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아보고 치유 받으려 그분께 달려간 이들은, 그분 말씀에서 그분 치유를 받아들일 믿음이 있는 이들일 게다. 자신이 병든 자임을 깨닫는 이만이, 치유를 간청하기에. 혹시 내가 하는 말들이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분열시키며, 때로는 혼란을 가져준다면, 나는 치유를 청할 줄도 모르는 영혼이 병든 이가 아닌지를 이참에 꼭 되돌아볼 때이리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우리는 하느님의 능력은 무한하며, 가끔 성체 조배를 통해 아픔을 말씀드리면 위로를 받는단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그분 힘을 이론적으로만 생각하며 어마어마한 것으로만 여기기에, 깊게 못 느낄 뿐일 게다. 기적은 따뜻함이고 차가운 마음을 녹이는 훈훈함이다. 예수님은 병든 이를 선뜻 낫게 하신 게 아니다. 먼저 마음을 열게 하신다. 다음에 당신의 능력을 주신다. 마음을 열었기에 우리는 뜨거움을 느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미사 중 영성체를 받아 모시면서 예수님 모심을 깊이 체험해야 할 게다. 그때마다 기적의 그분을 만나는 두려움이 앞서야 한다. 그러기에 습관적인 영성체가 아닌지 스스로 새겨보자. 애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모신다면 영의 힘이 생기로 다가오리라. 지금 이 순간도 애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린다면, 그분의 그 따뜻한 기적은 언제든 체험으로 느낄 수 있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겐네사렛,믿음,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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