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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부님들의 영원한 숙제와 딜레마인 강론에 대한 단상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12 조회수162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전에 타교구 신부님 중에서 한 분이 가볍게 강론 중에 지나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에 대한 스트레스만 없다면 신부생활 하기가 한결 부담이 줄어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한편 공감했습니다. 제가 한편 공감했다고 하면 또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바로 공감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논리적으로 보면 모순인 명제입니다. 저는 신부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고충을 백프로 이해를 할 수는 없지만 이런 고민을 하시는 신부님이 계신다면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강론은 어떻게 탄생되는지 그에 대한 평소 가진 단상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려서는 스님의 법문, 20대에는 목사님의 설교, 40대에는 가톨릭으로 개종을 한 후 신부님의 강론을 들어왔던 것입니다. 각 종교에서 말하는 형식은 달라도 의미는 동일한 것입니다. 훌륭한 법문이나 설교 또 강론이 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나 강론 같은 건 원고만 잘 쓴다고 훌륭한 강론이 되고 설교가 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여기에 대한 이론이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다양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제 경험에 비추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설령 아무리 훌륭한 원고 자료를 작성했다고 해도 그 원고를 바탕으로 해서 낭독이나 읽어나가는 형태에 따라 죽을 쓰는 설교나 강론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평소 마이크를 통해서 전달되는 음향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도 알고 있으면 아주 좋습니다. 이 이론은 음향에 관한 이론이 없으면 잘 알 수가 없긴 합니다만 그렇다면 이런 걸 잘 알고 하시는 분은 이론을 알고 하시는 게 아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어떻게 마이크와 거리를 유지하며 발성을 높혀야 할 때와 내릴 때를 감각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몸에 내재화를 시켰기 때문입니다. 

 

영어에만 인토네이션이 있는 줄 알지만 사실 한국어에도 미묘한 인토네이션(높낮이)이 있습니다. 이런 게 전체적으로 어우러지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원고가 있어 콘텐츠가 알차다고 해도 전달력과 호소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또한 조금 이탈하는 내용이지만 사실 저는 본당에서 가장 세심하게 투자를 해야 할 부분이 음향시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음향시설만큼은 최고급으로 해야 합니다. 제가 개종을 하고 나서 보니 천주교는 음향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또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도 전무한 실정입니다. 이건 신부님의 탓이 아니고 본당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음향시설이 좋으면 설사 신부님의 발성이 약간 문제가 있어도 음향으로도 커버가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 명동성당의 음향에 대해 글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10년을 살아도 카톨릭 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명동성당은 가지 않았지만 그 주변은 여러 차례 지나다닌 적이 있습니다. 신자가 된 후에 미사를 하러 갔을 때 상당히 기대를 하고 갔는데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가장 실망스러웠던 게 음향이었습니다. 명동성당과 같은 구조인데 그 이전에 전동성당에서 미사를 한 적도 있고 또 교육을 받았던 적도 있기 때문에 비교를 해보면 확연히 차이가 났기 때문에 더더욱 실망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때 기억으로는 강론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속되게 표현해서 그냥 앉았다 일어났다가 하는 행동만 반복하고 성체만 영하고 나온 게 그날 미사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모르겠어요. 원래 잘 됐는데 그날만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왜 이 사례를 말씀드리는지는 그만큼 음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 이웃 본당을 아울러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당 규모는 작은 규모입니다. 작은 본당인데 스피커를 통해서 전해져오는 소리가 명확합니다. 그러니까 신부님만 발성을 정확하게 하면 아주 뚜렷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당에서 신부님이 강론을 하시면 이런 부분에서는 훌륭한 점수를 줄 수가 있습니다. 제가 평균적으로 다양한 본당에서 미사를 지금까지 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 미세한 하울링이 생기는 경우가 많이 있고 또 스피커 배치가 건물 구조와 음향 공학에 맞추어서 해야 되는데 그냥 일률적으로 설치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경남 거제에 있는 한 개신교 교회에 가면 제가 개신교 때 여러 차례 가 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설교를 들으면 사람 음성이 방송국 수준으로 명확하게 들립니다. 그건 소리를 크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전문 음향 기술과 공학적으로 치밀하게 계산을 해서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제가 궁금해서 교회 관계자에게 문의를 하니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개신교는 우리와 전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찬양과 설교가 주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음향은 훌륭한 강론을 들을 수 있는 기본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조건이 만약 갖추어진 후에는 강론 원고 내용과 또한 발성이 정확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될 것입니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끊어읽기가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높낮이 강도 조절도 된다면 이건 환상적인 강론이 되어 신자들에게 호소력을 불러일으키고 가슴에 팍팍 와 닿는 강론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외적인 요인을 언급했습니다. 그럼 내적인 요인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강론 원고 내용이 얼마나 알찬지에 달려 있습니다. 강론 원고 내용은 사실 주관적일 수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호불호가 다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공통적인 내용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동일합니다. 무엇보다도 세부적인 내용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으로 글을 전개해나가는 방식이 아주 중요합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훌륭한 연사는 자신이 하는 말에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말에 논리가 없다면 아무리 내용이 좋은 것이라도 듣는 사람은 순간적으로는 좋은 내용을 듣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나중에 듣고 나서는 뭔가 좋은 말은 들은 것 같은데 핵심이 무엇인지 기억에 남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영어에서는 패러페이징이라고 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말은 다른데 의미는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특히 영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이건 대륙과 상관없이 대체적으로 잘 발달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들으면서도 내용이 한 곳으로 집중해 흘러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최종적으로 어떤 연설을 듣고 나서도 명쾌하게 주제가 무엇인지를 느낌으로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가지고 전달을 한다고 해도 주제가 산인지 바다인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것 하나만 주의해도 훌륭한 연설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을 가지고 애들을 지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 일등급 수준의 아이들을 상대로 했습니다. 이때 연설문의 내용을 해석해 주는 그런 지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글과 연설문이 보통의 글과 어떻게 다르고 또 왜 훌륭한 원고가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 줍니다. 또한 단어 선택의 중요성도 언급을 합니다. 같은 의미의 단어를 사용해도 문어체에 사용할 때와 구어체를 사용할 때와는 다른 어휘를 사용해야 고급진 문장이 될 수 있다는 걸 설명해 줍니다. 왜 이런 차이를 설명을 해 주느냐 하면은 언어의 가장 작은 의미 전달 수단 매개체는 각각의 단어가 모여저 이루이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걸 가르쳐줘야 합니다. 이게 가장 생명입니다. 단락과 단락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그 부분을 유심히 지도합니다. 사실 이 부분이 제가 연설문을 학생들을 상대로 해서 지도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입니다. 아무리 개별적인 내용이 좋아도 연결 고리를 구성하는 부분이 글을 작성할 때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으면 그건 마치 글의 흐름이 로봇의 움직임과 같아서 청중에게 짙은 호소력을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이 연결고리를 마치 건물을 설계할 때 설계도를 그리듯이 원고 내용을 작성할 때 이점을 항상 머리에 염두를 두고 해야 하는데 보통 보면 이런 게 잘 되지 않은 글은 내용의 흐름상 비문이 많이 생길 확률이 높을 수 있습니다. 

 

또한 평소에 단어에 대한 정확한 의미와 차이를 언어학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잘 숙지를 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모든 종교를 다 통틀어서 가장 어휘 선택 능력이 뛰어난 목회자를 봤습니다. 개신교 목사님입니다. 그분은 한국어 능력도 뛰어나지만 실제 희랍어에 상당히 능통합니다. 그래서 설교 때 양쪽 언어의 이중성을 잘 활용해 설교에 잘 대입하고 문장력도 아주 우수하기 때문에 제가 사실 예전에 그분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언어구사능력이 너무나도 탁월해 저도 부러울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그렇게 설교를 하기 때문에 그분의 설교는 일반 보통의 목사님의 설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수준 차이가 현저하게 나기 때문에 개신교에서도 정평이 난 목사님이십니다. 이건 무슨 이야기냐 하면 단순히 원고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이루는 단어 하나 하나의 의미도 명확해야 전체 내용이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분도 그렇게 좋은 설교로서 신자들에게 감동적인 설교를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연히 그분의 설교 원고를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 설교 내용을 보지는 않아도 그냥 그 원고만 봐도 훌륭한 설교 원고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느낌으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왜 그럴 것 같은지 아시겠는지요? 설교 원고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 여러 차례 단어의 순서와 문단의 순서를 수정하고 배열하기 위해 치열하게 교정한 게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치열한 과정이 수반되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감명 깊은 설교를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발음도 아주 정확합니다. 그건 제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정도 발음을 할 수 있으려면 그냥 읽는 연습만 해서는 절대 그런 수준의 발음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 추측에는 정말 피나는 연습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든 게 잘 어우러졌을 때 감동을 줄 수 있는 설교와 강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이런 글을 올리는 데에는 혹시나 만약 이 글을 보시는 신부님이 계신다면 또 이게 보이지 않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올리는 것입니다. 아니면 개소리로 취급하면 될 것이기 때문에 전혀 무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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