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복음묵상을 하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15 조회수127 추천수2 반대(0) 신고

 

여러분, 예수님은 비천하게 이 세상에 오셨다가 또 비참하게 이 세상을 떠나신 분입니다. 정작 그런 예수님 당신은 당신의 그런 운명을 어떻게 이해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 묵상해보셨습니까? 예수님도 팔자 타령을 하셨을 것 같습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이라면 또 그 누가 당신이라면 그 어떤 난관이 와도 피하려고 하는 생각은 조금은 하지 않고 그저 그게 당신만이 할 수밖에 없는 과업이라고 한다면 설령 그 길이 고난과 가시밭길 같은 길이라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어떻게 그렇게 그런 길을 걸어가셨는지를 이 사순시기 때 진지하게 묵상해봐야 할 것입니다. 묵상도 좋지만 묵상하는 선에서만 머물면 안 될 것입니다. 쉽지는 않지만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10년 간의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한다면 10년 전의 신앙의 성숙도와 10년이 지난 시점의 신앙생활이 같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과연 신앙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껍데기만 신앙생활을 한 것이지 내실은 인간세상 사람들이 하는 행동과 같이 했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는 신앙생활을 했다고 말하기엔 조금은 힘들 것입니다. 그나마 조금의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변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 말입니다. 근데 세상에서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신앙에 있어서 10년을 신앙생활을 했는데 성숙의 길로 가도 부족할 판인데 도리어 더 퇴보하고 신앙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보다도 더 못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흔히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하는 말이 부족하고 죄인이니까 성당에 오는 것이지 완전하면 성당에 올 수 있는가 하는 말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 얼핏 들으면 맞는 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냉철하게 생각하면 이런 사고관에 매몰돼 있으면 이런 사람은 절대는 아니지만 뭔가 신앙에 있어서 변화가 있을 확률이 아주 적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겠는지요? 이 말 이면에는 이런 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오긴 오지만 우리가 죄성에 물들어 있어도 죄인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인식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변할려고 하는 의지가 박약한 것입니다. 설령 변하려고 마음은 가지고는 있지만 그런 의지가 좌절됐을 때도 그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인식을 가지는 한 좋은 모습으로 변화를 기대를 하는 것은 마치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이 사람이 되는 걸 기대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사람의 사고관은 아주 중요합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고 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도 절대 불가능합니다. 절대 불가능해서 불가능한 게 아니고 이미 자신의 마음상태에서 가능성을 포기했기 때문에 뭔가 하려고 하는 원의가 상실했기 때문에 도전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일도 불가능이라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그 난관을 극복하려고 하는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에게는 불가능 속에서도 가능이라는 희망의 불꽃이 튈 때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불꽃이 잘 점화될 때는 그땐 불꽃이 아니라 불가능을 잠식시킬 수 있는 희망의 햇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순시기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숙제인 십자가도 그렇게 생각해야만 우리는 그 십자가가 고통의 십자가가 아니고 영광의 십자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 속에 있는 고통을 볼 게 아니라 십자가 너머에 있는 영광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그런 혜안을 가진 사람은 그게 비록 고통스런 십자가일이지라도 예수님께서 끝까지 지고 가신 그 십자가처럼 우리도 제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많은 십자가를 지었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어진 십자가를 잘 지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도 잘은 하지 못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는 게 부끄럽지만 십자가를 회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라고도 할 수 없고 또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만날 자격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길은 딱 한 가지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똑같이 걸어가야 합니다. 그랬을 때만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기쁨의 희열을 느낄 수 있지 설령 그렇게 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날 방법이 있다고 한다고 해도 그런 만남은 서먹서먹하고 어정쩡한 만남이 될 것입니다. 우리와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런 만남이 된다면 그것도 참으로 불행한 만남이 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세계는 영원한 세계이기 때문에 그런 상태가 영원한 상태로 된다면 말입니다. 이건 우리가 이성으로서 추측하고 사고했을 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주셨기 때문에 그게 당연할 것입니다. 이미 그런 내용을 창세기 성경에서 비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서도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일 매일의 십자가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마치 일용할 양식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간다면,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천국의 문 언저리쯤에 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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