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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2.1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18 조회수272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4년 2월 18일

사순 제1주일

예전에 이스라엘 성지 순례

다녀왔을 때가 생각납니다.

순례 코스 중에서 광야 체험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광야에서 몇 시간을 보내면서

광야가 어떤 곳인지 느껴보는 것입니다.

광야는 사막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닙니다.

물론 매우 덥고 따가운 햇빛을 맞으면서

살아야 했지만, 약간의 풀도 있고 또 물도

구할 수 있기에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와 같은 풍요로움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몇 시간 체험은 가능해도,

며칠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없어도 너무 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하느님 체험을 위해

많은 은수자가 움막을 치고 살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훨씬 더 많았다고 하니, 사람들은

하느님 체험을 위해 광야로 떠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광야에서 하느님

체험이 가능할까요? 단순히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사탄의 유혹을 받은 장소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기 때문일까요?

세상과 동떨어진 이곳에서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볼 것이 너무 많습니다.

즉, 정작 하느님을 보는 데는

소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는 볼 것이 없어서,

하느님께 집중하는데

최고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은수자가

곳을 찾았던 것입니다.

광야는 피해야 할 곳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찾아가는 곳이 되어야 했습니다.

반드시 이스라엘을

찾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도 세상에 파묻혀서 광야처럼

고통과 황량함을 느끼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을 만나야 할 때였습니다.

예수님도 광야로 가셨습니다.

가뜩이나 불편하고 황량함이 가득한

광야인데, 여기에 사탄의

유혹까지 받게 되십니다.

그것도 자그마치 40일 동안을 말이지요.

어려운 장소에서 더 어려운

시간을 겪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고

싶은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유혹받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도 광야에 가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역시

유혹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 역시 광야와 같은 고통과

시련의 장소로 불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도 받으신 것을

왜 나는 안 된다고 말할까요?

그 시간이 있었기에 하느님의 일인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한

기쁜 소식이지요. 그런데 정작 그 주인공인

우리는 광야와 같은 곳을 피하면서

철저하게 쉽고 편한 것만을

쫓았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오늘의 명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사진설명: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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