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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21 조회수128 추천수5 반대(0) 신고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루카 11,29-32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손으로 두 귀를 꽉 막고 있는 사람에게는 천둥 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표징도 믿을 마음이 없는 이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쇠 귀에 경 읽기’고, ‘돼지 목에 진주’일 뿐이지요. 마음이 그런 상태로 변하는 이유는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정말 열심히 해야 할 중요한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이득에만 신경을 쓰니 그 일이 지닌 의미와 보람을 찾는 진정한 ‘성취’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 그분을 따라다니던 군중들 중에도 그런 이들이 많았지요.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마음은 없으면서,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놀라운 기적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뜻과 가르침을 따라 살며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그분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가 원하는걸 얻어낼 생각만 했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참된 믿음으로,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삶으로 이끌고자 하셨지만, 세상의 것들만 고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꾸만 더 놀랍고 확실한 표징을 보여달라고 하는 그들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사는 이들을 ‘악한 세대’라고 표현하시지요. 윤리, 도덕, 법적으로 크나큰 잘못을 저질러서, 악의를 가지고 질 나쁜 범죄를 저질러서 그렇게 말씀하신게 아닙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진짜 악함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과 사랑을 의심하고 그분 사랑에 ‘증거’를 요구하는 완고하고 편협한 마음이기에, 그런 마음이 결국 하느님과 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그분과 나 사이에 불신이라는 커다란 장벽을 쌓아 사랑의 관계를 단절시키기에, 그것이야말로 악한 세력들이 가장 원하고 바라는 일이기에 조심해야 함을 분명히 알려주시려는 겁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그들에게 보여주실 것은 ‘요나의 표징’ 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표징’이란 요나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과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 사건을 의미하지요. 첫번째 표징은 바다에 빠져 고래에게 잡아먹혔던 요나가, 그 배 속에 갇혀있다가 사흘째 되는 날에 밖으로 나온 일입니다. 그가 고래에게 잡아먹혔는데도 죽지 않은 것은 하느님께서 그 어떤 어려움도, 심지어 죽음의 위험마저도 극복하시면서 당신이 뜻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고야 만다는 그분의 ‘전능하심’을 드러내는 표징이 됩니다. 또한 동시에 사람들의 반대와 핍박,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상황마저도 이겨내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두번째 표징은 요나 예언자가 니네베 성읍 한 복판으로 들어가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 3,4)고 외친 사건입니다.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진 멸망의 경고를 니네베 사람들이 귀기울여 듣고,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며 즉시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이 사건은 인간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던 당신 ‘뜻’마저 철회하시는 하느님의 큰 사랑을 드러내는 표징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 요나 예언자보다 더 큰 이가 바로 당신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칭송하는 솔로몬 왕보다 더 큰 이가 바로 당신이라고 하십니다. 요나의 역할은 니네베 사람들에게 내려질 심판을 ‘유예’하는 정도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희생하여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놀랍고도 거룩한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하느님께 받은 지혜는 그가 세상 것들에 물들고 타락하자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지만, 하느님의 지혜 자체이신 주님은 언제나 변함 없이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표징이 아니라, 표징을 알아볼 줄 아는 믿음입니다. 기이한 일을 찾아다니는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섭리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놀라게 하려고 오신게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 본질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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