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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2.2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26 조회수25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4년 2월 26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바람둥이 남자가 있습니다.

워낙 여자 문제를 많이 일으킨,

어느 날 동생이 형에게

“제발 정신 차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형은 어릴 때,

동생에게 엄마의 사랑을 빼앗긴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엄마가 동생만 챙기는 바람에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었고,

결국 지금의인간관계까지 망치고

있다는 항변이었습니다.

이 남자의 바람기가 과연

어머니 때문일까요?

어떤 형제님은 어린 자녀에게

폭력을 자주 씁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주변에서 말리자,

어렸을 때 자기 부모님께

맞았던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많이 맞은 경험이 자기 역시도

그렇게 폭력을 쓰는 사람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형제님의 폭력성이 과연

부모 때문일까요?

이 두 사례 말고도 ‘~탓’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를 탓하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로써 자기의 문제로부터

도망가는 것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났고 절대 바꿀 수가 없으니,

자신의 문제도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나의 모든 문제가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자기는 늘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지금 모습을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탓’만 하면서

지금 모습을 계속하고 싶을 뿐입니다.

나는 문제 없으니 그냥 이대로 살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으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나의 문제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도 문제를 넘기게 되어서

모두 힘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를

‘자비로우신 아버지’라고 선포하십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하게 됩니다.

따라서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받아들일 때,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하지 않는 삶, 단죄하지 않는 삶,

용서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를 닮은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하느님을

‘자비로우신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앞선 예에 등장하는 사람처럼,‘~탓’을

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면 자기도

그러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사랑의 삶을 그대로

되갚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그저 따를 뿐인데도,

그런 삶을 살 때 더 많은 은총과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탓’을 하는 삶에서 철저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비로우신 아버지’에 집중하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심을 보고

또 이를 따르는데 철저한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에게 문제 되는 것들을

과거의 일로 해결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지금, 그리고 나 자신이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에 매이지 않고 올바르게

지금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의 목적은 우리의 자유를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을 찾는 데 있다.

(휘시스)

사진설명: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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