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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화요일 복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26 조회수150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을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것일까요? 말만 번지레하게 하면서 행동은 그에 걸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잘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지도자나 리더의 자리에서 하는 말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지키지 못했다고 또는 말대로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다만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책임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이때의 비난은 전자의 비난과는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행일치라는 것은 보통의 범인에게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리더와 같은 입장에서는 자신의 직위라든지 신분이 가져다주는 권위가 있기 때문에 그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 위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그게 지도자이면 그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입만 그리스도인인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는 모릅니다. 자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말입니다. 행동은 한마디로 조금 심하게 말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에 부끄러운 행동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렇게 행동을 했을 때 고상한 말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비난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을 비난한 이유는 행동이 좋지 못해서 비난했다라는 말보다 더 정확한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는 하기 힘들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자기가 말한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행동을 보여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뭘 말해주는 것일까요? 말에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에 상응하는 게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그 사람의 말은 권위적인 권위가 아니라 품격에서 나오는 권위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제가 선생을 해봐서 알고 또 학창 시절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실력 있는 선생은 절대 학생들이 만만하게 보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그게 불량한 학생도 그렇습니다. 그런 학생은 선생의 실력과는 무관한데도 말입니다. 학생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선생이 되려면 행동거지도 말할 것도 없지만 선생은 실력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일 때 학생은 그 선생을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제가 몇 차례 언급한 여학생이 있습니다. 제가 약 10년 동안 지도를 했습니다. 마산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갑부 집 여학생입니다. 이 애는 제가 서울대를 보내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카톡을 보내오면서 자기가 공부하는 박사 과정 내용의 영어를 질문했습니다. 아무리 제가 영어를 교육하는 사람이라도 전문적인 영어는 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제가 엄청 고민을 해서 답을 줬습니다. 애가 놀라워하면서 쌤 고마워요. 역시 쌤은 달라라고 했습니다.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 애는 자기 아빠 다음으로 저를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성격은 속되게 표현해서 아주 까칠한데 본성은 착한 애입니다. 사실 부잣집 애다 보니 저한테 배우면서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서울에서 선생을 공수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 선생과도 뭔가 차별이 있었기에 그때 그 애가 저를 완전히 인정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뭐 실력이 좋다는 게 아니라 그 여학생과 코드가 맞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생은 실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듯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당 같으면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존경받는 성직자, 수도자가 되려면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될 것입니다. 어떤 원리일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앞두고 하신 말씀대로 신자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줬을 때 그때 비로소 존경받는 신부님과 수녀님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이건 불멸의 진리입니다. 수도복이 천국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수도복의 권위는 시어머니와 같은 모습보다는 자상한 엄마와 같은 모습으로 신자에게 다가갈 때 그 수도복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도복이 될 수 있지만 시어머니와 같은 모습으로 신자에게 다가가는 수도복은 하느님의 영광을 가리는 수도복이 될 수 있습니다.

 

수단과 수도복의 권위는 신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사랑하는 맘으로 보살펴주라고 하느님이 입혀주신 것이라는 것을 이 땅에 있는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분들이 깊이 묵상해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단 이건 성직자와 수도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일반 신자들도 다 해당됩니다. 우리에게도 일반 보편 사제직이 수여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신도도 수도복만 입지 않았다는 것뿐이지 하느님을 향해 가는 길에서는 누구나가 다 수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반 평신도도 존경받는 평신도가 되는 길은 평신도 위치에서 각자 해야 할 일을 잘 수행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그건 각자에게 숙제로 남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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