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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29 조회수98 추천수5 반대(0) 신고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루카 16,19-31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비유’는 그 이야기를 듣는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 즉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말씀하시는가에 따라 같은 말씀이라도 그 뜻이 미묘하게 달라질 때가 있는데 오늘 복음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듣는 이들은 바로 ‘바리사이’들입니다.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기 자신만 죄를 짓지 않고 율법을 충실히 지키며 잘 살면 구원받는다고 믿던 근본주의자들이지요. 그런데 자신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잘 살아도 죄를 지어 부정해진 이들과 접촉하면 그 부정함이 자신에게 물든다고 생각했기에, 바리사이들은 자신이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것만큼, 부정한 이와 접촉하지 않는데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죄인들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분리’시켜 영적인 거룩함과 순수성을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들을 일컫는 ‘바리사이’라는 용어의 어원이 ‘분리된 사람’, 혹은 ‘구분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통해 타인과 나를 분리시키는 개인주의,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여기는 이기주의가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서 그분과 나 사이를 갈라놓는 커다란 ‘장벽’이 됨을 알려주십니다. 오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당시 왕들이나 입을 수 있을 정도로 귀하고 값도 비싼 자주색 옷과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살 정도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 집 문 앞에 병든 채 누워있는 라자로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질병과 굶주림에 지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던 그를 동네 개들이 달려들어 귀찮게 구는데도 그 상황을 나 몰라라 했지요. 자신은 라자로와 아무 상관 없다고, 라자로가 그렇게 된 건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며, 라자로와 자기 사이에 무관심과 냉대의 골짜기를 깊이 파놓고 철저히 분리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세상에서 파놓고 메우지 않은 그 분리의 골짜기가 저 세상에서도 그의 주위에 그대로 남아 그와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고 맙니다. 그게 다 ‘인과응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지요.

 

따지고 보면 이 부자는 특별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자기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다른 이에게 피해나 상처를 입혔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저 자비를 베풀지 않았을 뿐이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을 뿐이며, 이웃의 아픔에 무관심했을 뿐입니다. 다들 그러고 살잖아요? 이 팍팍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 내 코가 석 자라 남을 챙길 여유가 없잖아요? 하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기합리화를 하다가는 나도 나중에 그 부자처럼 될 겁니다. 그러기 전에 정신 번쩍 차려야 합니다. 남에게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천국갈 거라고, 아니 적어도 지옥엔 안갈거라고 두 손 놓고 가만히 있다가는 언제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게 하나 있습니다. 나와 남 사이에,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에 다리를 하나 놓는 일입니다. 사랑의 다리, 관심의 다리, 나눔의 다리, 연민의 다리... 그 다리는 지금이 아니면 놓을 수 없습니다. 공사를 지금 당장 시작해야 나중에 내가 하느님 나라로 건너갈 수 있는 구원의 다리가 생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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