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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 2 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4-03-01 조회수381 추천수5 반대(0)

후배 신부님들과 뉴욕에서 댈러스까지 자동차 여행을 하였습니다. 신부님들이 제가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까지 가는 길에 동행해 주었습니다. 신부님들이 운전해 주었고, 가는 길에 숙소를 예약해 주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동행해 주셨던 것처럼 먼 길을 가는 제게 신부님들이 함께해 주니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여행 중에 교회에 관한 이야기, 정치에 관한 이야기, 사제 생활에 관한 이야기, 문학에 관한 이야기,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했기에 여행은 순조로웠습니다. 숙소를 예약한 신부님은 그동안 쌓아 놓은 마일리지를 이용해서 저렴한 가격에 업그레이드된 숙소를 잡아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도 업그레이드된 항공편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저의 마일리지를 보고서 저도 얼마든지 업그레이드된 숙소와 항공을 예약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비로소 보배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였습니다.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앙에도 업그레이드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마일리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저는 신앙의 업그레이드는 능력이나 재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업그레이드는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맬지라도 회개하면 밝은 광명에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방탕하여 하느님과 멀어졌을지라도 회개하면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던 바오로 사도는 회개하였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마니교에 심취했고,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즐겼습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의 회개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회개하였고, 위대한 교회의 학자가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즐겼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회개하였고, 쓰러져가는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오상을 간직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잘못을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자비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 주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선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더욱 기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의 눈물을 흘렸던 베드로 사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런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회개하였던 죄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일지라도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회개를 보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우리 모두 회개하여 업그레이드 된 신앙생활을 하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 주면서 우리들 또한 우리의 이웃들에게 업그레이드된 신앙을 선물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주인공인 것 같습니까? 아들을 사랑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버지, 돌아온 아들에게 잘못을 묻지 않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열심히 일을 했고, 아버지의 집이 하느님 나라임을 알지 못하고 돌아온 동생에게 잘해 주시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큰아들이 있습니다.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던 둘째 아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큰아들과 같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은 무관심입니다.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것들에 대한 외면입니다. 그것은 잘못한 이들에게 용서와 관용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단죄하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태도입니다.

 

아버지는 하느님 나라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집을 나간 둘째 아들들 생각하였습니다. 그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몸은 비록 하느님 나라에 있었어도 마음은 둘째 아들과 함께하였습니다. 그것이 관심이며, 그것이 사랑입니다. 첫째 아들의 마음으로 사는 것은 몸은 천국에 있다고 해도 천국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멀리 떨어진 특별한 공간이 아닙니다. 천국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 억울한 사람, 정의를 위해서 투신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희망을 이야기하고, 평화를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천국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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