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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리스도교 신앙으로도 자기를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4-03-07 조회수4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4. 3. 7.


❝ 그리스도교 신앙으로도 자기를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하다가 교회라는 공동체를 망쳐도 상관이 없습니다.

망쳐도 상관없다니까 눈이 뚱그레지시는데 순교가 무엇입니까?

순교란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켜서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왜 어느 한 교회가 영원무궁해야 합니까?

순교란 하느님의 일하시는 놀라운 방법이 아닙니까?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는 방법, 죽음에서 부활을 만들어 내시는 하느님의 방법이 우리에게 순교를 요구합니다.

교회는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보이는 것으로 힘을 가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 안에 있는 것으로 힘을 가지십시오.

그것만이 우리의 무기(武技)가 되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16절 이하의 말씀에서 결론으로 다음의 표현이 나옵니다.

(갈라5,22-24) ‘22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23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사람의 의(義)와 하느님의 의(義)를 이보다 더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는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으로도 자기를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님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관한 싸움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예수님을 닮는 싸움이고 나를 버리는 싸움입니다.

내가 없어진다는 것은 나의 존재가 없어진다거나 나의 어떤 주권과 나의 고유한 요소들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하느님의 통치(統治) 안에 들어가 그 통치의 영광을 누리는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갈라5,25-26) '25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26 우리는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싸움을 걸지 말고 서로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어디에 있는지 보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곧 십자가 안에서의 용서와 사랑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서로 싸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무엇인들 참을 수 없는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자기 의(義)를 주장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산상설교의 마태복음 7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비판하는 의로움, 단죄하여 가지는 의로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기 정체성의 내용은 없고 상대방을 비판하고 단죄해서 증명되는 자기 의로움만 드러날 뿐입니다.

이러한 의(義)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 용서하고, 사랑하고, 깊어지고, 하느님이 허락한 거룩한 것들로 채워지는 의로움과는 완전히 대비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자신을 채워 나가는 것이 되지 못하고 옆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구하러 오셨고 죄인들을 용서하러 오셨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며, 그의 수난이며, 우리를 구원한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것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실의 모든 위협과 시련 앞에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문제를 해결하여 세상에 나를 증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용서하고 성실히 살며 죽음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 안에 있는 하느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자로서 싸움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존재와 인생을 하느님께 맡기는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다고 우리들의 삶이 이 땅에서 형통(亨通)해진다고는 약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순교로 갈 수 있습니다. 고난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하느님의 통치에 대하여 제대로 항복한다면 우리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현실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습니다. 짐이 가벼워져서가 아니라 억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을 사십시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이유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이유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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