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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겸손으로 용서구하는 기도를 /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3-09 조회수149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겸손으로 용서구하는 기도를 / 사순 제3주간 토요일(루카 18,9-14)

 

한 유다 청년이 율법 학자에게 자랑했다. “저는 탈무드를 세 번 읽었습니다.” 사실 탈무드는 분량이 방대해 참으로 놀라왔다. 그런데 학자는 감탄은커녕 대꾸다. “그대가 세 번이나 읽었다고? 그럼 탈무드는 그대를 몇 번이나 읽었는가?” 청년은 이에 크게 깨닫고 돌아갔다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사실 바리사이가 기도한 대로 불의를 저지르지 않았기에 그를 의인이라 할 수가. 일주일에 단식을 두 번이나 하고 십일조 내었다고 의롭다 할 수은 가. 의로움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자신의 겸손을 드러내는 삶에서만 나오니까.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이는 그 어떤 위대한 일을 하여도, 의인이 될 수는 없을 게다. 하느님 없이 스스로 의롭게 할 수 있는 이는 정녕코 없기에.

 

많이 가지면 많이 드러내고 싶으리라. 자리가 높으면 인정받고 싶어 하리라. 그게 다 본능이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자랑에 앞서 먼저 낮추라신다. 세리의 겸손에 비해 바리사이의 넋두리는 속 좁다. 사실 세리는 죄와 연관된 삶을 사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주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기도는 주님 자비를 청하는 단 한마디뿐이다. 자신을 낮추었기에 은총을 받을 수 있었다.


톨스토이의 무엇이 인생인가?’라는 책의 에 대한 내용이다. 두 여인이 현자의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나. 그 중 한 여인은 자신을 큰 죄인이라 여겼고, 또 한 여인은 한평생 율법을 지키며 이렇다 할 죄를 짓지 않았단다. 현자는 첫 번째 여인에게 나가서 당신이 들 수 있는 큰 돌 하나 갖고 오시오.”라 하고, 다른 이에게는 가능한 작은 돌 많이 가져오시오.”라고 일렀다.

 

다시 현자는 가져 온 것들을 제자리에 놓으라고 말했다. 첫 여인은 돌의 자리를 금방 찾아 갖다 놓았지만, 다른 여인은 도무지 어디서 주웠는지 몰라 그냥 돌아왔다. 현자는 말했다. “저 여인은 돌을 주운 곳을 기억하였기에 그 큰 돌을 제자리에 두었고, 그대는 그 많은 작은 돌을 어디서 주웠는지를 정녕 기억을 못했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라오. 죄도 마찬가지죠.”

 

죄 짓는 족속 회개로 깨끗해지기에 그리 큰 부담 없이 산다나. 일견 올바른 신앙 같지만, 여기에는 하느님 자비의 여지가 없을뿐더러 하느님께서도 들어설 리 없다. 이는 구원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게 아닌, 나에게서 오는 거니까. 스스로 구원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여겨야만 하느님 향하리라.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게 기도다. 이것이 하느님을 향해 우리 마음을 여는 것이고, 그분 은총이 우리에게 거기로 들어오는 통로이니까. 그리하여 하느님을 초대하여 자신과의 소박하고 격의 없는 소통에, 겸손하게 열린 마음으로 응답할 수가 있으면 참 좋겠다.

 

애절한 기도는 주님도 기억하신다. 우리가 잊더라도 때가 되면 들어주신다. 여겨 달라는 한마디 말만으로도 은총을 받을 게다. 필요한 말은 많지 않다. 오히려 남을 속이거나 변명과 자랑이 필요할 때에 말 많이 한다. 기도는 그러한 행위가 아니다. 자신의 덕을 쌓지 못해 과장된 포장을 드러내는 죄인으로 살기보다, 자신의 죄를 회개로 용서를 청하는 기도드리자. 하느님은 남모르게 이루어지는 선행에 대해서도 티끌하나 버리지 않고 알아보신다. 그분은 자신이 실천한 선행과 덕을 자랑하는 의인보다, 겸손하게 용서를 청하는 죄인을 더 기쁘게 받아 주시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겸손,용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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