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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참 어머님이신 우리 성모님 / 연중 제10주일 나해(마르 3,20-3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08 조회수73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참 어머님이신 우리 성모님 / 연중 제10주일 나해(마르 3,20-35)

 

그때에 예수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서 사람을 보내 예수님을 불렀다. 그들이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 누이들이 밖에 계십니다.”하고 일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며 반문하셨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다. 하느님 뜻을 실행하는 이가 바로 내 형제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함께 나자렛 고향을 떠나 온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는 전도 여행을 떠나신다. 그 아드님을 멀리 떠나보낸 성모님의 그 마음을 과연 무엇에다 비할 수가 있으랴? 간간히 들려오는 아드님의 그 소식은 먹보요 술꾼, 세리와 창녀의 친구라는 마음 아픈 빈정거림이었다. 군대 간 아들을 위해 그 어머니는 매일 밤 촛불을 밝혀두고 묵상과 묵주기도, 자녀를 위한 기도를 바친다. 우리는 성모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가히 짐작할게다.  

 

그 아드님이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다. 어머님은 만사를 제치고 한걸음에 주님의 형제들과 그곳으로 달려간다. 사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성모님처럼 목말라하고 그리워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야속한 군중이 가로막았다. 그렇지만 고맙게도 그들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라고 이른다.

 

예수님은 이러한 그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어쩌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인간적으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는 감이 든다. 그렇지만 우리는 혈육의 관계인 인간적인 한계로 ,과도하게 예수님과 어머니의 관계를 가족적인 시각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지를 스스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 뜻은 우리와는 분명히 달랐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다.”라고 그분은 거기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사실 어떤 자들은 이를 두고서는 마리아께 공경을 드릴 필요가 없단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이렇게 성모님 면전에서 면박주면서 상처를 안겼다나.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그것은 자신의 상처를 성모님께 투영하는 인간적 어리석음과 같을 수도. 본인이 그런 자이기에 성모님도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겠는가?

 

내 어머니와 내 형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다.” 이는 성모님을 배제하는 게 아닌, 오히려 성모님을 최고의 참 가족으로 여긴 것이다. 만에 하나 그분께서 성모님을 끌어안았다면 그 예수님은 진정 하느님으로 우리 뇌리에 남았을까? 그리고 성모님은 만인이 기리는 어머님이 되셨을까? 아마도 성모님은 군중의 전갈에 역시 내 새끼!’라시며 흥겨워 춤이라도 더덩실 추셨으리라.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 성모님을 신앙적으로도 참 어머니로 추켜세우셨다.

 

우리는 정녕 참 아버지요, 참 어머니인가? 참 자녀요 참 형제냐? 인간적인 관계로 한정되어서는 참 가족이라 말할 수가 없다. 그 중심에 언제나 우리가 믿는 그분께서 계셔야만 한다. 그분은 말씀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 분이시기에. 지금도 우리 성모님은 부르심 받은 하늘나라에서 아들 예수님과 어울려 역시 내 새끼!’라며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실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성모님,혈육,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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