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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보라는 예수님은 안 보고...>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24 조회수40 추천수3 반대(0) 신고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루카 1,57-58).”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루카 1,63-66).”

 

 

 

1) 우리 교회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요한의 탄생은 메시아 강생의 예고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탄생을 경축하는 것은, 사실은 ‘메시아 강생’을

 

경축하는 것이고, 이 대축일의 진짜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요한 1,6-8).”

 

이 말은, 세례자 요한을 깎아내리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은

 

참 빛이신 분’(메시아이신 분)이라고 증언하는 말입니다.

 

<옛말에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왜 손가락만 보느냐?”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보라고 가리키는데, 보라는 예수님은

 

안 보고 요한의 손가락만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나를 보지 말고,

 

그분을(예수님을) 바라보아라.” 라는 뜻입니다.

 

구원은 요한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옵니다.

 

따라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라는

 

말을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나타내는 말로만 생각하는 것은,

 

생각이 짧은 것입니다.

 

물론 세례자 요한이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자신의 겸손을 드러내기 위한 말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집중하라는 권고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를 제대로 알고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하느님의 구원사업에서 자기의 위치가 어디인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등장하시면

 

자기는 물러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겸손이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2) 세례자 요한의 사명에 대해서, “하느님께서는 왜

 

메시아 앞에 세례자 요한을 보내셨을까? 그냥 메시아께서

 

곧바로 활동하셨어도 되지 않은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효율성을 생각하면, 세례자 요한이 없었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모든 사람을 회개시킨 것도 아니고,

 

요한 덕분에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 활동을 쉽게

 

시작하실 수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요한 5,33-36).”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의 활동이 구원 사업의 필수

 

요소는 아니었다는 것을 나타내신 말씀이면서, 동시에

 

하느님께서 메시아 예수님보다 예언자 요한을 먼저

 

보내신 것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 라는 것을, 즉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쉽게 메시아를 믿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배려라는 것을 나타내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3)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세례자 요한의 활동이

 

필요했겠지만,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에게는 필요

 

없지 않은가? 왜 우리 교회는 아직도 세례자 요한과

 

그의 활동을 중시하고 있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대답은 단순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명을 완수하고 떠났지만,

 

그의 ‘회개 선포’는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우리에게 ‘회개 선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업이 아직도 진행 중인 것처럼,

 

요한이 선포한 ‘회개 선포’도 아직도 진행 중인 일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의 구원과 멸망이 완전히 확정될 때까지는,

 

우리는 계속해서 요한의 회개 선포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루카 3,7ㄴ-8ㄱ).”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루카 3,9).”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 것이다(루카 3,16ㅁ-17).”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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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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