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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서로’가 아니라 ‘내가 먼저’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25 조회수55 추천수2 반대(0) 신고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

 

1) 신자들 사이에 분쟁이 생긴 경우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가

했던 말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1코린 6,1)”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 그래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도리어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고

또 속입니다. 그것도 형제들을 말입니다(1코린 6,5-8).”

여기서 ‘불신자들, 이교도들’을 ‘다른 나라’, 또는 ‘외세’로

바꾸면, 이 권고는 우리 민족의 문제에도 잘 적용이 됩니다.

<‘어찌 이교도들에게 가느냐?’ 라는 말을, ‘어찌 무력으로

해결하려고만 하느냐?’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2)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 라는 말은,

불의와 악을 방관하거나 방치하라는 뜻이 아니라,

형제애를(사랑을) 먼저 생각하라는 권고입니다.

그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38-39).”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3-44).”

<이 가르침에 대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개인 간의

사적인 문제에서 실천하는 것도 힘들지만, 국제 문제에서

실천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특히 남북문제에서 실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사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자들입니다.>

 

3) 남북문제의 해법은 “서로 용서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화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긴 한데,

‘서로’ 라는 말에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남의 일’이라면 ‘서로’ 용서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일’에 대해서는

“서로 용서해야 한다.”가 아니라

“내가 먼저 용서한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남북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입니다.

<성경에 있는 예수님 말씀에서 ‘서로’ 라는 말은,

가르치는 입장에서 사용하신 표현일 뿐입니다.

뜻으로는 ‘네가 먼저’입니다.>

그는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그를 용서하는 것,

또 그는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아도, 내가 먼저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는 나와 화해하기를 바라지

않아도 내가 먼저 그와 화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만이 용서와 화해를 실현하는 방법입니다.

개인의 사적인 문제에서도 그렇고, 국가 간의 문제에서도

그렇고, 특히 남북문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언제나 항상 ‘내가 먼저’입니다.

 

4)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라는 예수님 말씀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 긴 세월 동안 간절하게 남북통일을

염원하면서 기도하고 있는데도 왜 통일이 되지 않는

것인가?”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로 마음을 모으고 있는가?”

전 국민이 정말로 한마음으로 평화를 원하고,

통일을 원하고, 화해를 원하는가?

사람들 가운데에는 전쟁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평화통일이 아니라 무력통일을 주장하는 자들도 많지 않은가?

그리고 사실 통일 자체에 관심이 없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제대로 모으지 않고 있는데,

무슨 염치로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도

심각하게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려면,

그리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바란다면,

우선 먼저 예수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의 회개’이고,

‘나의 회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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