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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 신부님_아가서의 교훈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25 조회수41 추천수0 반대(0) 신고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지난번 마지막 강의로 예언서가 끝이 났고요.

시간 관계로 구약성서 전권을 들춰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곳, 또 조금 부연 설명이 필요한 곳을 설명하려 합니다.



한번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 아가서입니다.

아가서는 이사야 예언서 앞쪽으로 있고, 총 8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1장의 시작이 뭐라 되어 있느냐, ‘가장 아름다운 솔로몬의 노래’라 되어 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아가서를 읽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마 그것은 한참 혈기 왕성한 신학생들이 혹시라도 이 아가서를 읽고 분심이 들까 염려 차원이었던 것 같아요.

1장 처음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리워라, 뜨거운 임의 입술, 포도주보다 달콤한 임의 사랑.

임의 향내, 그지없이 싱그럽고 임의 이름, 따라놓은 향수 같아 아가씨들이 사랑한다오.’

뭐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또 7장에는 ‘두 허벅지가 엇갈리는 곳은 영락없이 공들여 만든 패물이요,

배꼽은 향긋한 술이 찰랑이는 동그란 술잔, 허리는 나리꽃을 두른 밀단이요,

젖가슴은 한 쌍 사슴과 같고 한 쌍 노루와 같네요’ 등등 관능적인 말들이 참 많습니다.



처음 아가서를 접했을 때 어떻게 이런 책이 성서에 끼게 되었는지 좀 아주 이상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사실 교회에서는 설교 내용으로는 거의 인용이 되질 않습니다.

그렇지만 문학적으로 보면 확실히 아름답고 부드러운 언어로 연결된 시극이지요.

하지만 등장인물이 몇 사람인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따라서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도 처음 읽어봐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아가서를 이해하는데 노력을 덜어드리기 위해 줄거리를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을 여행합니다.

그런데 어느 시골에서 정말 아름다운 한 소녀를 보고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깁니다.

솔로몬 왕은 자기 궁전으로 소녀를 데리고 와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가진 애를 다 쓰지요.

그렇지만 아름다운 소녀에게는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죠.

양을 치는 연인이 있었던 겁니다.

소녀는 금은보화와 권력을 가진 왕보다도 가난한 목동인 연인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굳은 그 소녀의 마음을 꺾지 못한 솔로몬 왕은 단념하고 소녀를 돌려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목동과 소녀는 기쁨이 넘쳐서 마음껏 서로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알다시피 솔로몬이 아무리 세계 제일의 지혜로운 자였지만, 왕의 권위를 가지고도 또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도

한 소녀의 연인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단념시키지를 못합니다.

여기에서 하나의 교훈이 나오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마치 소녀와 같이

세상의 권위에도 굴하지 않고 금전에 유혹되는 일도 없어야 하고,

오직 하느님에 대한 사랑, 그 한 길만을 뚫고 나아가야만 한다고 하는 교훈이 바로 첫 번째입니다.

이해되시죠?

솔로몬의 온갖 회유에도 불구하고 이 소녀는 오로지 목동 연인에 대한 사랑이 충만했듯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우리도 역시 아무리 세상 권력과 유혹이 심하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바라봐야 하는 목표는 하느님 한 분뿐이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솔로몬 왕의 방에서 최대 권력자인 왕의 간절한 사랑의 호소를 소녀는 거절하죠.

그리고 일편단심 가난하게 양치는 소년을 연모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갸륵한 일이겠습니까?

대개는 넘어갑니다.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솔로몬은 지혜로움만이 아니라 그 생김이 아주 잘생긴 미남이었습니다.

그리고 당대 제일의 지혜로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왕이 소녀를 유혹할 때 그 유혹의 말이 얼마나 교묘했겠습니까?

솔로몬의 언변은 또 대단한 언변이었죠.

‘금은보화가 바로 다 네 것이다. 내가 네 사랑을 차지할 수만 있다면 다 줄 수 있다.’

솔로몬의 뜻대로 하면 소녀는 금 방석 위에 올라앉게 되는 인생 역전의 찬스였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소녀의 마음을 절대 움직이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소녀와 연인 사이에 사랑으로 한번 바꿔놓고 봅시다.

우리들의 신앙이 과연 이렇게 강할 수 있을까?

권력 앞에서 협박당하고 개종을 당하고 세상적 이득이나 유혹을 당하여도,

의연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강한 신앙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아가서의 핵심은 지금 얘기한 대로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한 소녀의 모습이

우리가 하느님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가서를 읽으면서 어떤 관능적인 글자 자체에만 꽂히질 않고, 나중에 세월이 지나면서 순교자들의 모습,

특히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순교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묵주를 밟으면 살려주겠다. 십자가에 침 뱉어라.’

‘밖에 나가 아이들과 살아야 하지 않느냐?’

이런 온갖 회유에도 우리 선배 순교자들은 묵주를 밟지 않고 십자가에 침 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목이 잘렸죠.

그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뼈가 부러져 살을 뚫고 나오는 상상도 못 할 육체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오로지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변치 않았던 겁니다.



과연 요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 퀄리티 순도는 얼마나 될까?

그 옛날 순교자들이 말 한마디만 하면 살 수 있었던 모습을 보고,

혹시라도 일단 배교하고 산 다음에 고백성사를 보든지 더 열심히 살아서 한 번 배반했던 것을 기워 갚으면 되지 않느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인데, 묵주 한 번 밟는다고, 십자가에 침 뱉는다고 그게 무슨 대수인가?

이런 식의 실용적이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을 때는 언제든지 배교할 수 있고

또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합리주의를 신앙 안에 대입시키고 또 그런 식으로 살려고 애를 쓸 겁니다.



제가 교우들에게 또 피정 때 그런 얘기를 하죠.

군인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구호를 외치듯이 우리 믿는 자들의 신앙 구호가 있다.

기억하십니까?

오직 예수님께 대한 사랑,

오직 예수님께 대한 순명,

오직 예수님께 대한 충성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또 흔들릴 때마다 외쳐야 하는 신앙 구호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 순명, 충성, 그 앞에 있는 ‘오직’이라는 말이 우리를 늘 부담스럽게 하죠.

‘오직’이라고 하는 말은 순도를 나타내죠.

마치 여러분 손가락에 끼어 있는 금반지가 14K냐 18K냐 24K 순금이냐죠.

어떤 이들은 18K짜리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14K짜리 하느님에 대한 충성, 하느님에 대한 순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24K짜리 순도 100%짜리의 신앙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들의 목표만큼은 순도 24K짜리 순금을 향해야 합니다.

순도 100%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 순도 100%를 목표로 하는 하느님에 대한 순명, 순도 100%를 지향하는 하느님에 대한 충성,

이렇게 목표를 잡아도 누구라도 살다 보면 불순물이 끼고 농도가 탁해집니다.

어떤 이들은 98%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살다가 2%의 불순물이 껴서 냉담에 빠지거나, 또는 배교자가 되거나 흔들립니다.

어떤 이들은 70% 순도의 하느님에 대한 순명으로 살다가 30%의 시커먼 불순물 때문에 순명을 못 하고 교회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가 지향하는 순도만큼은 순도 100%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오직’이라고 하는 말은 ‘순도’를 의미합니다.



오직 예수님께 대한 사랑, 오직 예수님께 대한 순명, 오직 예수님께 대한 충성.

아가서에 나오는 소녀의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이 얼마나 우리들의 신앙의 모범인가를 아가서는 교훈하고 있죠.

신앙은 물론이고요. 연애도 우정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는 감동의 드라마이며 아름다운 시가 바로 아가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가서를 반드시 한번 읽어보셔야 하는데, 지금 제가 설명해 드린 대로

그런 전체적인 밑그림을 깔아두고 아가서를 읽으면, 그냥 관능적인 글자에서부터 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소녀와 연인의 그 뜨거운 사랑, 순수한 사랑.

그리고 어떤 것도 그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는 둘의 정말 찐사랑!

바로 우리들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그 소녀와 목동인 소년의 사랑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바로 아가서의 교훈이라는 겁니다.



제가 오늘 간단히 설명한 내용을 머릿속에 생각하시면서 아가서를 읽으시면 분심 없이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름다운 글은 확실합니다.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해 사랑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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