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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마태오 7, 15 - 20
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25 조회수38 추천수3 반대(0) 신고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7, 16. 17)

오늘 복음의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는 말씀을 요한복음에 나오는 ‘포도나무의 비유’와 연관해서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나무는 예수님이시고 좋은 열매는 예수님 안에 머물러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이미 요한복음 15장을 묵상하면서 나눴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느님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지향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이고, 하느님으로부터 존재이고 하느님을 위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떨어져서는 어떠한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좋은 나무인 예수님 안에 살아갈 때, 그 나무의 가지인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 항구히 머물 때 자연스레 때가 되면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가장 적당한 때 수도 생활을 시작해서 참 다행이었다, 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느끼는 것처럼 참으로 심각하면서도 신속하게 변하는 세상을 보면서 앞으로 수도 생활할 후학들이 걱정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는 모든 사람에게서 떨어져 있는 존재이며, 또 모든 사람과 함께 있는 존재이다, 는 관점에서 볼 때 수도자의 이중적 삶의 운동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고 살아가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으리라 봅니다. 예전엔 모든 것이 확실하고 분명했지만, 다원화된 세상에서는 어느 것도 확실한 게 없는 듯싶습니다. 수도자의 청빈, 정결 순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예전보다 더 많고 그럴듯한 갖가지 감언이설로, 진리와 오류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미묘한 요구들로 말미암아 수도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수도자는 본디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하느님께 속한 자이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세상의 풍조에 맞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요구와 유혹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보조를 맞추려는 저 자신을 볼 때, 분명하고 확고한 성소의 동기가 없다면 자신의 신원을 유지하고 살아가야 할 후학들이 걱정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성소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7,15)하고 말씀하신 것도 이런 연유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저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주님이란 좋은 나무에 붙어 있은 지 벌써 50년이 훨씬 지났건만 아직도 제대로 익은 열매가 열리지 않은 듯싶어 자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열매가 지금은 익어가는 시기이지만 아직 수확의 때가 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안하면서, 수확의 시간까지 꿋꿋이 예수님의 나무에 붙어 있으려고 합니다. “너희들은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7,20)라는 말처럼 혹자는 저를 보고 그토록 오랜 시간 수도 생활을 했으면서도 달린 열매마저도 볼품도 없고 향기도 나지 않는다고 실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도 저 자신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야 더더욱 실망이 클 것입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처럼,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마십시오. 물론 지금껏 저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부족한 게 아니었습니다. 다 저의 노력 부족이고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임을 인정합니다.

고려 때 지눌 선사가 표현하길 『소는 물을 먹어서 젖을 내고, 뱀은 물을 먹어서 독을 냅니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물을 먹는데 소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젖을 내고, 같은 물을 먹어 뱀은 사람을 해치는 독을 낸다는 뜻입니다. 존재가 바뀌지 않는 한 그 존재에게서 다른 것이 나올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저는 분명 제 존재를 바꿀 수 없지만,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은총에 온전히 의탁하고 봉헌하는 존재를 내치지 않고 항구하게 머무는 그 열정과 열성을 보시고 그 나무에 맞은 열매를 맺도록 바꿔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사이비’라는 단어를 알고 자주 사용합니다. 그 뜻은 닮은 듯하지만, 닮은 게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이비가 무서운 이유는 진짜와 거의 흡사하기에, 누구나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사이비는 자신도 거짓 속에 살지만, 속아 따라오는 사람들도 거짓의 수렁에 빠뜨립니다. 가짜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면 아무도 속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가짜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사람은 이미 가짜가 아닙니다. 가짜(=작퉁)이면서 진짜(=명품)인 체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저는 이 지면을 통해 고백합니다. 저는 거짓 예언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이비 수도자는 아닙니다. 다만 익어가는 과정에 있고 미처 열매를 맺지 못했을 뿐입니다. 다만 저는 저의 실패와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꿋꿋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려고 몸부림치고, 예수님의 은총을 붙들고 살려는 제 마음만은 의심하지 말아 주시고 판단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 우리 모두 당신 안에 항구히 머물면서 언젠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길 바랍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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