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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3주일 나해, 교황주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30 조회수57 추천수4 반대(1) 신고

[연중 제13주일 나해, 교황주일] 마태 5,21-43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루르드 성지’는 놀라운 기적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거기서 일어난 치유의 기적이 보고된 게 7000여 건에 이르며,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만해도 70건이나 됩니다. 그 중 가장 최근에 공인된 기적은 하반신 마비가 치유된 한 수녀님의 사례입니다. ‘베르나데트 모리오’ 수녀는 27살 때 허리 신경근이 압박을 받아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이를 고치기 위해 4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지요. 그녀는 한쪽 다리가 완전히 뒤틀려 보조기구를 착용해야 했으며, 통증을 참기 위해 상당량의 모르핀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성모 발현 150주년을 맞아 루르드를 순례하는 동안 고해성사를 하고 병자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치유가 일어나기를 바라기보다 그저 자신이 회개하기를, 그리고 환자로서 남은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힘을 주시기를 기도했지요. 순례를 마치고 본원에 돌아온 후, 그녀는 놀랍게도 몸이 편안해지며 전체적으로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한쪽 다리를 고정했던 보조기구를 풀었으며,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했던 신경자극기도 뗐습니다. 그렇게 통증이 사라졌고 그후부터 어떤 기구의 도움 없이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 뜻에 온전히 순명하며 그분께 의탁한 결과로 불치병의 치유라는 기적을 체험한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처럼 주님께 대한 순명과 의탁을 통해 그분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두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한 사람은 유다교의 종교예식을 주관하는 회당장인 ‘야이로’였고, 다른 한 사람은 무려 12년 동안이나 몸에서 피를 흘리는 불치병으로 고통받던 가련한 여인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두 사람이 주님을 만나 기적을 체험하기까지 밟아나간 공통적인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야 할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 첫번째 단계는 ‘주님께 다가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겁니다. 야이로는 주님 가까이 가기 위해 체면과 자존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예식을 주관하는 회당장이 정규 율법교육 조차 제대로 못 받은 이를 찾아가 부탁을 한다는게 결코 쉽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딸의 병을 고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기꺼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또한 여인은 주님 가까이 가기 위해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일을, 더 나아가 정결에 관한 율법규정에 따라 엄한 처벌 받는 것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그만큼 병에서 낫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단계는 ‘주님 앞에 엎드림’입니다. 다른 사람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그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는 것이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그에게 온전히 내맡긴다는 표시입니다. 야이로가 주님 앞에 엎드린 것은 그만큼 그 딸의 병세가 위중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분이 자신을 도와주시기만 한다면 백 번 아니 천 번이라도 얼마든지 무릎 꿇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여인이 주님 앞에 엎드린 것은 그저 옷자락에 손을 댄 것만으로 불치병을 고쳐주시는 놀라운 권능을 지니신 그분에 비하면 자신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미천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부족함 뿐만 아니라, 주님께 미리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그분 능력을 제멋대로 이용했던 잘못까지 함께 고백하지요. 그분께서 ‘주님’이심을 마음으로 믿었기에 그분 앞에서 자기 자신을, 자기 잘못과 부족함을 온전히 드러내고 의탁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말 못할 고민이나 근심 걱정이 있다면 주님 앞에 엎드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저로서는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기에, 이 문제를 당신께 맡겨드립니다. 저에게는 오직 주님 당신 뿐입니다. 제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으셔도, 그 또한 당신 뜻이기에 저는 그저 받아들이고 따르겠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대로 저를 통해 이루십시오.’ 믿음은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무한히 초월하는 그분 뜻을 나의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놀라운 능력으로 당신 뜻을 내 안에서 이루십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내 뜻과 의지대로, 내 계획과 예상대로 안되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하는 겁니다. 바로 야이로가 지닌 두려움입니다. ‘치유자’이신 주님을 제 때 자기 집으로 모셔가기만 하면 그분께서 자기 아들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주실 거라 예상하고 기대했는데, 시간이 지체되는 사이 그만 딸이 죽어버렸습니다. 이대로 딸을 영영 잃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절망이 그를 덮쳐왔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한 목소리로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인간의 능력과 사고 안에 갇혀 스스로 두려움에 빠지지 말고, 당신 능력으로 더 좋은 일, 더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을 굳게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죽게 만드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여인이 지닌 두려움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 나에게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가 원하던 일만 이루면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주님이 자신을 당신 앞으로 부르시니 질책을 듣거나 벌을 받지 않을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던 겁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녀의 예상을 무한히 뛰어넘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녀가 병에서 치유된 것이 당신 몰래 죄짓듯이 한 잘못된 행동의 효과가 아니라, 당신께서 바라시는 일이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그렇게 그녀는 주님께 대한 ‘믿음과 의탁’이라는 단계를 통해 인간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야이로에게 일어날 믿음의 기적을 미리 보여주는 ‘표징’이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 삶에 기적을 일으키시는 목적이자 기준은 ‘믿음’입니다. 당신께 대한 믿음이 이미 깊고 단단하다면 그 믿음대로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만으로도 큰 기적이 됩니다. 당신께 대한 믿음이 아직 얕고 부족하다면 고통과 시련을 통해, 그리고 깨달음을 통해 단단하게 만드신 다음 그 믿는 만큼에 더 큰 축복을 덤으로 얹어 주십니다. 하혈하던 여인에게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주님 앞에 당당히 서는 것이, 그분 앞에서 자기 부족함과 약함, 실수와 잘못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성숙된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무사히 마친 그녀에게 주님은 ‘구원’이라는 참된 선물을 주시고 거기에 영육간의 건강까지 덤으로 얹어 주십니다. 이제 야이로의 차례입니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거쳐야 합니다. 딸이 죽은 마당에 예수님을 믿어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불신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모든 희망이 다 사라진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은 주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주님께서 쉼표를 찍으신 곳에 섣불리 마침표를 찍지 않고 그분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이 있어야, 언젠가 그 때가 무르익었을 때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주님의 손을 꼭 잡고 절망을 털고 일어납시다. “탈리타 쿰!”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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