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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믿는 것이 곧 아는 것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07 조회수43 추천수3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마르 6,1-6).”

 

 

 

1)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나자렛 사람들의 반응’을

 

‘카파르나움 사람들의 반응’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르 1,21-22).”

 

카파르나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놀란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사람들을 압도하는 권위를,

 

즉 ‘하느님의 힘’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들이 놀란 것은,

 

목수 일을 하면서 살았던 사람이 예언자처럼,

 

또는 랍비처럼 사람들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느님의 ‘지혜의 말씀’이라는 것은 알아들었는데,

 

그 말씀에서 ‘하느님의 힘’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서 가르치셨던 것과는 다르게

 

가르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나자렛 사람들이 ‘말씀’에는

 

집중하지 않고, 예수님의 출신과 직업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적에 대해서도 두 고을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을 본 카파르나움 사람들은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라는 반응을 보였는데(마르 1,27),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3절).

 

그것은, “목수는 목수 일이나 할 것이지 어찌 감히

 

예언자 행세를 하는가?” 라는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2) 5절의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라는 말은, 그래도 몇몇 병자는

 

예수님을 믿어서 치유의 은총을 얻었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그 병자들 외에는 예수님께 병의 치유를 간청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예수님께서 ‘치유의 은총’을 주실

 

기회 자체가 없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놀라셨다.’는 ‘안타까워 하셨다.’입니다.

 

<청하는 사람만이 받게 됩니다(마태 7,7).

 

안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즉 청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청하지 않아서 못 받게 됩니다.>

 

 

 

3) 예루살렘 주민들의 반응도 나자렛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요한 7,27)”

 

<이 말은 “나자렛의 가난한 목수가

 

메시아일 수는 없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요한 7,28-29).”

 

이 말씀은, “너희는 나를 나자렛의 목수로만 알고 있지만,

 

그것은 나를 아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내가 하느님께서

 

보내셔서 온 메시아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4) ‘믿는 것’이 곧 ‘아는 것’입니다.

 

먼저 믿으면, 그 믿음을 통해서 깨닫게 되고, 알게 됩니다.

 

만일에 먼저 알아야만(이해해야만) 믿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앎’을 얻지도 못하고, 점점 더 무지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고, 믿기를 거부하는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무슨 수행이나 수련으로 깨달음에

 

도달하는 종교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깨달음의 은총을 얻는 종교입니다(요한 8,31-32).>

 

 

 

5) 신앙생활은, 먼저 믿고, 그 ‘믿음’에서 시작하여

 

‘참된 앎’을 향해 나아가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성경 공부와 교리 공부는 왜 하는가?

 

믿음이 먼저라면 공부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성경 공부와 교리 공부는 ‘지식’을 쌓기 위한 일이 아니라,

 

믿는 사람과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더 깊은 믿음을 갖기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만일에 믿음 없이, 또는 믿기를 거부하면서 성경을 공부하고

 

교리를 공부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안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성경은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로만 보일 것이고, 교리는 ‘뜬구름 잡는 것 같은’

 

허황한 이론으로만 보일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서

 

‘참된 앎’이 시작됩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교리들은, 인간적인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깨달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알고 싶으면 먼저 믿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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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14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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