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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12 조회수43 추천수1 반대(0) 신고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24-31).”

 

 

 

1)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제자가 스승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라는 말씀은, 제자들은(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뒤만 잘 따라가면 된다는 뜻인데,

 

제자들이(신앙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이 죽음으로 끝난 일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졌음을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일이기도 하고, 부활에 참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죽으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지상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죽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인생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잘 따라가야 합니다.>

 

 

 

2)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그자들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육신의 죽음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섭지 않으니까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죽는 것은 무서운 일이긴 한데,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으로

 

그 무서움을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여라.” 라는 말씀은, 하느님을

 

무서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만’ 섬기라는 뜻입니다.

 

또 영혼이 멸망당하는 것을 무서워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무서움’이 아니라,

 

즉 공포심이 아니라, ‘경외심’입니다.

 

우리는 ‘무서움’과 ‘경외심’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에 하느님이 무서워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생활에는 사랑도 없고 기쁨도 없고, 그 생활은

 

아무 의미 없는 강제노동이 될 뿐입니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고, 내가 사랑하는 분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1요한 4,18).”>

 

 

 

3)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까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우리를 아주 세심하게 보살피시고 돌보신다는 뜻입니다.

 

시편 작가는 그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했습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시편 23,4).”

 

<‘어둠의 골짜기’는 ‘죽음의 골짜기’로 번역할 수도

 

있는 말인데,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과 시련들을 가리킵니다.

 

넓은 뜻으로, 지상에서의 인생살이를 뜻하는 말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어둠의 골짜기’ 자체를

 

없애 주시는 분이라고 찬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편 작가는 하느님께서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그곳이 ‘어둠의 골짜기’ 라고 해도,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과 보호만 강조하셨고,

 

박해 자체를 없애 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수난과 죽음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부활과 승천으로

 

직행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것은 하느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수난과 죽음을 거치셔야만 했는가?”,

 

또는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가?”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파스카의 신비’ 라고 부릅니다.>

 

 

 

4)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너희를 더

 

아끼시고 사랑하신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는 “박해자들은 참새들보다 못한 ‘하찮은’ 존재다.”

 

라는 뜻도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라는 말씀은,

 

“너희는 박해자들보다 더 귀하다.”,

 

또는 “너희는 로마 황제보다 더 귀하다.” 라는 뜻이 됩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을 안 믿으면서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자들은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참새보다

 

더 하찮은, 또는 먼지보다 더 하찮은 존재들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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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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